월요일, 6월 27, 2011


2011/06/28 00:02

정미경의원입니다.

법안발의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졌읍니다.
모두들 다 안될거라고 했지만, 법안발의한 것도 대단한 거라고 했지만,
전 될거라고 믿었읍니다.

국방위원회에 간 것도, 연평도포격도발사건이 난 것도, 장관이 바뀐 것도, 장관청문회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강한 군대를 만들까 고민한 것도, 귀신잡는해병대를 떠올린 것도, 인터넷에 들어가 해병대관련자료를 찾아본 것도, 우연같지가 않았읍니다.

격려로, 칭찬으로, 사랑으로, 한마음을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진정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해병대는 저에게 조직의 위대함을 가르쳐주셨읍니다. ㅎ ㅎ ㅎ

대한민국의 미래에 해병대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해병대   화이팅


2011/06/27 09:30
존경하는 정미경 의원님 인사가 늦었읍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ㅎㅎㅎ 지난번 국회가서 해병대 독립성강화 제안설명을 들으면서 이후 국회본회의 통과 그리고 기념촬영 감격스런 순간들이 었읍니다 이순간이 있기까지 의원님 노고에 다시 한번 고개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해병대는 의원님을 영원히 잊지않을 겁니다 -- 필승 --     일등 국회의원, 일등 의정활동

2011/06/25 23:48
정의원님!
해병대를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구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6/25 10:38
정미경의원님!
해병대를 전역한 한사람으로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해병대 전역자들은 의원님의 의정활동에 헌신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의원님을 사랑합니다

2011/06/24 18:19
의원님 사법시험 때 보다 더 힘들게 연구하시고 공부하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되는 일이었겠습니까?
얼마나 노력하시고 고민하셨을까요???
감사합니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의 노력을 감히 상상해봅니다.
필승

2011/06/24 16:53
정의원님 !
고맙고,수고 많으셨습니다.
64년도에 제대를 한 늙은 해병이지만 해병대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사는 사람 입니다.
제 고향이 용인이라 의원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힘을 보태겠습니다.
다시 한번 해병대 독자성 강화 법안 국회 통과를 감사 드리며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2011/06/24 11:44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38년 묵은 설움도 씻겼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리며 의원님의 의정활동에 항상 복되고 길한 기운이 함께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해병대예비역

2011/06/24 10:53
의원님 감사합니다.그저 그저 감사하다는 말뿐 다른 할말이 없네요.
가슴에 응어리진 한없는 한이 오늘에야 풀렸습니다.
우리 해병대는 의원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겁니다.
해병대 화이팅~ 정미경의원님 화이팅~
해병!

2011/06/23 20:28

                     존경하는 정미경의원님!!!!!

   오늘 국회 본회의 해병대 관련 법안 제안설명과 통과되는 모습을 국회tv에서 잘 보았습니다.
   항상 당당한 모습,시원시원한 명쾌한 논리,애국심,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해병대현역,예비역들의 오랜 숙원이 2011년 6월 23일 이루어 졌습니다.모든 해병대 구성원들은
   정미경의원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해병대 현역들은 기대에 부응 할 차례입니다.더욱 더 열심히 전술전기를 연마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봉에서 희생하는 국민의 군대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또한 육,해,공군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모범을 보이는 군대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조만간 수원시 권선구를 지형정찰 할 예정입니다.지도를 보니 저의 집에서 1시간 정도면 충분
   할 것으로 보입니다.권선구에 가서 식사도 해보고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생각 할 시간을 가지겠
   습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1/06/23 17:50
38년의 숙원을 풀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 100만 해병대 예비역과 현역들은 결코 "정미경"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을겁니다.
앞으로 우리 해병대는 "국민들로부터는 가장 사랑받고 신뢰받는 군대"..."적에게는 가장 전률을
주는 군대"로 거듭날것 입니다.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필씅!!!

2011/06/23 15:15
사랑하는 정미경 의원님~~
드디어 해병대 독자적 권한강화 관련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네요.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해병대의 역사에 정미경 의원님을 함께 담아 두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해병대를 살려주신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2011/06/23 11:08
한나라당지지자는 아니지만 우리 모임회원들 모두 정미경의원님을 사랑하고 지지합니다.여성임에도 남자의원들보다 훨씬 강하고 바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란걸 여러 활동을 보며 느낍니다.이번 해병대 관련법도 오랜 숙원이었고 서해5도 전력보강도 촌각을 다투는 일이지만,사실 연평도,백령도보다 훨씬 심각한 곳이 김포 해병사단입니다.50년도 더 지난 해안포며 군함에서 떼다논 대공화기들-쏘면 나갈지 의문-40년 넘은 전차가 서울관문에 있는 해병대의 현실입니다.썩은 무기에 무늬만 해병대가 아니고 진정으로 싸울수 있는 강군해병대를 만들어 주세요. 연합훈련 나가면 육군이나 미군들 우리보고 신기해 합니다. 해병대의 정예화를 위해 항상 관심과 애정 가져주시고 드러내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사랑한다는거 늘 잊지 마세요. 감사드리고 건강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금요일, 6월 24, 2011

우리는 이런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해병대는 결코 구타로 강해진 군대가 아닙니다.
해병대는 자유분방한 사회 속에 살아오던 민간인을
강인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명예를 지키려는 자존(自尊)을
갖게 함으로써 강한 해병으로 만들어 왔으며,
이들이 초석이 되어 지난 60여년간 강한 해병대,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해병대의 면모를 갖추어 왔습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해병대의 요람으로써
광부가 더운 지열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좋은 원석을 캐내듯이
여러분의 아들들을 최상급 원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원석으로 연단된 우리 해병들이 실무부대에 가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 속에서 나날이 더욱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화한 후
건강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또한 그들이 미래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 쓰임받음을 지켜보며
우리가 흘린 구슬땀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람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래서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우리의 아들들을 이런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평탄하고 편안한 길을 가기보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이에 도전하고 한계를 극복할 줄 아는
강인한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두 손 가득 움켜지려고 하는 욕심과 자기 것만 아는 집착 대신에
아픈 이들을 돌볼 줄 알고, 없는 이들에겐 나눌 줄도 알며,
패자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아는
담대한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조직의 명예를 위해
매 순간 생을 엄숙하게 살아가는
명예로운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대한 사생관을 확립하여
원대한 꿈을 위해 매 순간 죽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가 높은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최선을 다한 실패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과
격랑같은 두려움에도 태연할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지고
규율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품격 높은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파괴하는 것이 강인함이 아니란 것을 알고
약한 자를 보호하고 전우를 상해하지 않는
온유한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부모님의 큰 사랑과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소중함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며
20년 후 뒤돌아봤을 때 2년간의 군생활로 인해
청춘이 빛났다고 회고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해병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리하여 미래의 대한민국 지도자로서 귀하게 쓰임받는 재목이 되게 하겠습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정훈공보실

목요일, 6월 23, 2011

"경 축" 해병대 제2 창설을 축하합니다




오늘을 海兵隊 제2創設日 로 ~~ !!!



오늘은
대한민국 해병대
인사/재정/군수보급/상륙작전권이
38년간의 숙원이던
1973년 이전으로 환수
2011년6월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하였습니다.

모군 해병대 발전의
선봉에서  해병대사랑에 앞장서는
대한민국 해병대
선후배님들의 승리의날임을  알려드리는바 입니다.

투표 결과>
*국군조직법 - 찬성 : 205 (전원찬성)

*군인사법 - 찬성 : 223, 기권 : 1

*군수관리법 - 찬성 : 218, 기권 : 3

EK

'독립성 강화' 해병대 뭐가 달라지나?

국회 국방위원회가 23일 해병대의 독립성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군조직법 일부 개정안'과 '군 인사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해병대의 위상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국방위 의결로 가장 주목되는 해병대의 변화는 해병대사령관이 독자적인 인사와 예산권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독립성의 상징인 인사와 예산권이 해병대사령관에게 주어지면서 해병대는 앞으로 독자적인 부대운영에 한층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또 앞으로 해병대는 '해병 소위'라는 고유한 계급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그동안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으로 임관하는 소위는 '해군 소위'로 불렸지만 앞으로는 해병 소위로 불리게 된다.

병적관리도 해병대가 독자적으로 하게 된다.

현재 해병 장교 7명이 해군본부에 파견돼 수행하던 병적관리 업무가 해병대로 이관된다.

병적기록부는 3부에서 2부로 줄어든다.

그동안 해병 병적기록부 정본은 해군본부에,부본 2부는 각각 해병대사령부와 소속 부대에 보관해왔지만 앞으로는 정본은 해병대사령부에 부본1부는 소속 부대에 두게 된다.

전력 소요 제기도 해군과 분리된다.

해병대에 필요한 전력은 해군과 분리해 소요를 제기하고 국방부와 합참이 이를 승인하게 된다.

그동안은 해군본부가 해군과 해병대의 전력을 통합해 소요를 제기해 왔다.

또 방위사업추진위윈회에 배석만 해왔던 해병대사령관은 앞으로 해병대 전력 소요문제에 대해 서명(결정)권한을 가지게 된다.

부사관과 병사들의 전역증명서에는 해군참모총장 대신 해병대사령관의 이름이 들어간다.

해병으로서의 소속감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djlee@cbs.co.kr

해병대 1973년 이전으로 독립법안 국회본회 통과

국군조직법에 해병대의 주 임무를 상륙작전으로 규정한 조항이 부활했다.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되면서 ‘각 군의 임무’ 조항에 해병대 주 임무가 삭제된 지 38년 만이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23일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군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회의에서는 해군의 상륙작전권 박탈 논란이 일었다. 앞서 국방위 법안심사소위가 한나라당 정미경,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국군조직법·군인사법 개정안을 통합한 대안에서 해군의 주 임무는 해상작전으로, 해병대의 주 임무는 상륙작전으로 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국회가 입법권을 갖고는 있지만 작전은 전문가인 군 의견을 존중해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방장관 출신인 같은 당 김장수 의원은 “군 경험으로 봤을 때 법이 군사작전 교리까지 제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병대 출신인 신학용 의원은 “작전의 문제가 아니라 해병대에 어떤 기능을 주느냐의 문제”라고 반박했고,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은 “해군에 통합되기 전인 1973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거들었다.

이견이 계속되자 원유철 국방위원장은 회의를 중단하고 여야 간사 및 김관진 국방장관과 해법을 모색한 뒤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는 문구로 대체된 수정안을 내놓았다. 수정안은 표결에 부쳐졌고 김장수 서종표 의원 2명의 반대 속에 찬성 8명, 기권 2명으로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일요일, 6월 19, 2011

아시아나항공 사격 사건…꼬리에 꼬리 무는 의문 3

아시아나항공 사격 사건…꼬리에 꼬리 무는 의문 3

지난 17일 인천 교동도 해병대 초병들이 우리 민항기를 향해 K-2 소총 99발을 오인 사격한 사건을 두고 논란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군은 민항기를 적 공군기로 오인해 경고사격을 했다고 해명했지만 항공사는 정상 항로대로 운항했다며 맞서고 있다.
양측의 공방이 팽팽한 가운데 사건 발생 시간 20분 전후에도 똑같은 항로를 다른 민항기가 운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오인 사격 배경에 대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아시아나항공 측이 제기하고 있는 의문점은 세 가지다.
먼저 오인 사격을 당한 민항기는 해병대 교동도 초소에서 남쪽으로 17㎞ 떨어진 정상 항로 위를 날고 있었다는 것. 10년간 사용해온 항로를 17㎞나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국토부와 항공사의 공통된 견해다.
더욱이 민항기는 레이더로 관제하기 때문에 항적 기록이 남게 된다. 사건 발생 직후 서울지방항공청이 해당 민항기의 항적을 분석한 결과 비행기는 정상항로를 운항 중이었다.
두 번째 의혹은 사건 당일 오인 사격을 받은 민항기 말고도 똑같은 항로를 다른 민항기들이 운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날 오전 4시 1분께 오인 사격을 당한 비행기가 지나가기 20분 전 외국 민항기가 지나갔고, 사건 발생 20분 후에도 같은 항공사 소속 민항기가 지나갔다. 세 비행기 모두 같은 항적을 그렸다. 3대의 비행기가 20분 간격으로 똑같이 움직였는데 유독 한 비행기에만 대고 사격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인 사격을 한 해병대 초소는 교동도 남측 해안에 위치한 초소로 남쪽 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쪽 해안을 경계ㆍ감시하는 초소에서 항공기가 북한에서 날아왔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국토부 관계자는 "만약 해당 초소가 북측을 향해 있었고, 해병대 말대로 적 항공기를 다시 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북측 상공을 향해 총을 쐈다면 말이 되겠지만 당시 민항기는 초소보다 훨씬 남쪽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해당 민항기는 인천공항 서쪽 상공(초소보다 남쪽)에서 선회한 뒤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해병대 측은 평소 주문도 쪽에서 못 보던 비행기가 가까이 나타나자 북한 공군기로 오인해 사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사건 발생 당시 해상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아군 민항기인지 식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다만 초병들은 미식별 항공기에 대해 경계 매뉴얼대로 경고사격을 진행했던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민석기 기자 / 임태우 기자]

토요일, 6월 18, 2011

김시록 해병대사령부 부사령관-적 도발하면 합동작전으로 즉각 격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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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도서는 북한군의 목에 들이댄 비수인 동시에 ‘불침항모’로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서북도서방위 사령부(서방사)는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도발 때는 합동작전으로 즉각 격멸할 것입니다.”
서북 5개 도서의 방어를 전담하는 서방사 창설에 핵심적 역할을 한 김시록(해병대준장·사진) 해병대사령부 부사령관은 서방사의 창설로 적 도발에 대한 반응 속도는 대폭 단축되고 도발 억지력은 크게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김 부사령관은 그 첫째 이유로 전력 증강을 들었다. 전력은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지속적으로 보강돼 왔다.
“안정된 방어와 유사시 즉각 타격을 위해 155㎜ K-9 자주포와 전차·신형 대포병레이더 아서(ARTHUR) 등 11종은 이미 전력배치가 완료됐습니다. 공격헬기 등 나머지 전력보강이 완료되면 서북 5개 도서 지역은 물론 북한의 도발 원점까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완벽히 갖출 것으로 확신합니다.”
해병대사령부를 모체로 하는 서방사는 통상 지원부대 역할을 해 왔던 기존의 합동부대와 달리 창군 이래 최초로 육·해·공군 요원이 합동참모로 편성된 실질적인 작전사령부다. 따라서 합동성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9개 처로 구성된 서방사 합동참모부는 합동작전 수행능력 강화 차원에서 적의 도발 원점과 도발 수단 등을 파악하는 정보처장에 공군대령이, 작전을 수행하는 작전처장에 해병대대령이, 적의 공격에 대응사격을 하게 될 화력처장에 육군대령이 임명됐습니다. 이들은 수개월 전부터 호흡을 맞춰 왔으며, 각군의 장점을 통합한 합동전력을 운용함으로써 적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지휘체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김 부사령관은 최근 북한이 황해도 고암포 해군기지에 공기부양정 정박기지를 완공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북한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기부양정 등을 이용한 적의 기습강점 기도에 대비해 실시간 감시·타격이 가능한 대비태세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령도 해병대6여단과 연평부대는 한층 삼엄한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증강된 전력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실전 같은 교육훈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상작전 외에도 대상륙방어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발전시키고 부대별 임무 숙달과 지형 숙지를 위한 실기동훈련을 반복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서북도서 장병·지역주민의 생존성 강화 방안도 소개했다. 축선별 진지·교통호 등을 먼저 요새화하고 점진적으로 거점을 보강하는 2단계로 구분해 추진하고 있다는 것. 주민 대피시설도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올해 말까지 42곳을 신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사령관은 “이제 북한이 도발을 자행할 경우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응징해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서북도서 수호의 강한 자신감과 함께 다짐을 들려줬다. “서방사가 합동성의 시험대가 되는 만큼 상황별로 대응개념을 구체화하고, 제 작전요소를 통합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서북도서 주민과 우리의 영토를 안전하게 보전하고, 합동전력의 힘을 바탕으로 지역 내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 나가겠습니다.”<국방일보 윤병노기자>

목요일, 6월 16, 2011

해병대 독립법안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

2011/06/15 23:30
해병대 법안이 법사위에서 통과되었읍니다. 드디어 본회의로 넘어오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우리 모두 마음과 마음을 모아서 화이팅입니다.

수요일, 6월 15, 2011

"서북도서 우리가 지킨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



(화성=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북 5개 도서의 방어를 전담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식이 열려 김관진 국방장관(왼쪽)이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이자 서북도서방위사령관에게 부대기를 전달하고 있다. 2011.6.15











화요일, 6월 14, 2011

서북도서 방위사령부(서방사) 오늘 출범

서북 5도 방어 전담… '서방사(서북도서방위사령부)' 오늘 출범



코브라 공격헬기 등 증강 배치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북 5도 방어를 전담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15일 창설된다.

15일 오후 3시 경기도 발안 해병대사령부 연병장에서 김관진 국방장관 주관으로 창설식을 갖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해병대사령부를 모체(母體)로 하는 육·해·공 합동사령부다.

해병대사령관(중장)이 사령관을 겸하고 각 군 간 합동성(合同性) 강화를 위해 정보처장은 공군 대령이, 작전처장은 해병 대령이, 화력처장은 육군 대령이 맡는다.

조직도 확대 개편됐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의 정보처·작전처·화력처 병력은 종전 해병대사령부 시절보다 40여명 늘어 77명이며, 화력처 예하에 항공지원작전본부·해상지원작전본부를 새로 편성했다. 또 서북도서 지역에 M48 전차와 국산다연장로켓 '구룡'을 배치했고 K-9 자주포와 K-10 포탄운반차도 추가로 들여놓았다.

9월 중엔 코브라 공격헬기도 배치하고 신형 대포병레이더 아서(ARTHUR), 음향표적탐지장비(HALO)와 전방관측용 주·야간 관측장비, 정밀타격유도무기, 전술비행선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해병 6여단과 연평부대를 작전 지휘하며 서북 5개 도서는 물론 북한의 도발 원점(原點)까지를 작전구역으로 한다.

합참 관계자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로 과거 인사와 군수 등 군정(軍政) 업무에 치중됐던 해병대사령부가 작전을 지휘하는 실질적인 작전사령부의 기능을 하게 됐다"고 했다.



[최경운 기자 codel@chosun.com]

월요일, 6월 13, 2011

서북도서 방위사령부(서방사) 15일 창설

육ㆍ해ㆍ공 합동참모단 구성, 대포병레이더ㆍK-9자주포 등으로 무장

북한의 천안함ㆍ연평도 도발 후 서북도서에 대한 우리 군 전력 강화를 위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가 15일 창설된다고 합참이 밝혔다.

14일 합참에 따르면 서방사는 15일 오후 김관진 국방장관 주관으로 경기 발안의 해병대사령부에서 공식 창설식을 가진다.

서방사는 전략적 요충지인 서북 5개 도서지역의 방어를 전담하게 되며, 합참의장으로부터 직접 작전지휘를 받으며 유사시 합참의장이 운용하는 합동전력의 지원을 받는다.

해병대사령부를 모체로 창설되는 서방사는 해병대사령관(중장)이 사령관을 겸직하며, 현 해병대사령부의 정보ㆍ작전ㆍ화력 참모부 인원이 보강된 체제로 출범하게 된다.

특히 육ㆍ해ㆍ공군을 포함해 합동참모단 77명(육군 4, 해군 9, 공군 8, 해병대 56)이 사령관을 도와 다양한 적의 도발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합참에 따르면 서방사는 창설에 앞서 서북도서지역에 적 도발시 즉각 탐지 가능한 대포병레이다와 K-9 자주포 등을 보강했으며, 함정 및 전투기 등 합동전력을 즉각 운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또 생존성 보장을 위해 주요 전투시설을 유개화하고 있으며, 주민 대피시설도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합참 관계자는 “서방사 창설을 계기로 서북도서 방어력이 한층 보강됐다”며 “유사시 서방사령관 책임 하에 합동전력을 운용하여 도발세력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창설식에는 김 장관을 비롯 원유철 국회 국방위원장 및 국방위원,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샤프 연합사령관, 각 작전사령관 및 서방사 장병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권대경기자 kwon@sed.co.kr


금요일, 6월 10, 2011

과연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해병대의 해체를 모르고 있었을까?

과연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해병대의 해체를 모르고 있었을까?

 비록 오래 전의 일이나 그 사실이 올바른 내용이었건 잘 못된 내용이었건 우리는 그 지난 일, 특히 잘못된 내용 등은 그 사실을 교훈삼아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전사나 과거사를 연구하고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가 당시 피눈물을 흘린 해병대의 해체에 관한 사실도 제외 될 수 없다.
근래에 와서 내가 Internet를 통해서 당시의 해병대 사령관의 부관(현재 Canada에 거주)으로부터 전해들은, 새삼스레 알게 된 해병대의 해체에 관한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당시(진해소재 해병대학 총장 1970년)에는 예상도 못했던 막연한 의문으로 그 후 곧 잊고 있었으나 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다시 확인 되었기에 해병대의 해체 당시의 당사자(도서경비부대장, 해병 대령)로서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해병대가 너무 커졌어"라고 말했다.
그는 60년 대말 어느 석상에서 "해병대가 너무 커졌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해병대가 너무 강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해병대가 강해지면 당연히 국가의 통치자로서, 국군의 통수권자로서 기뻐하여야 할 일이겠지만 그에게는 해병대가 부담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 자기의 오늘이 있게 해 준 해병대를 누가 키웠단 말인가?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 어떻게 다른 속뜻이 없고서야 대통령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너무 커져서 인제는 자기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자신의 정치야망을 실현시키기에는 해병대가 너무 커져서 이제는 걸림돌이라는 뜻으로밖에 생각안되는 표현이다. 그러면 그는 왜 혁명동지였던 해병대를 경원시하게 되었을까?
국가경영을 올바르게 제대로 했으면 자기와의 혁명동지인 해병대가 커지는 것이 기뻐하여야 할 일이지만 그는 반대로 오히려 우려했다. 당연한 것을 우려하는 것은 그 속에 딴 꿍꿍이 속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교묘히 국가예산의 절감이라는, 그것도 얼마되지 않는 허구한 구실로 해병대의 전투력 강화라는, 수적 증가라는 미명하에 해병대 사령부와 그 직활부대를 해체시키므로써 머리(수뇌부)와 다리(지원부대)를 완전히 잘라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교활하고 악랄한 수법인가?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의 중단
거기에 더하여 한국전쟁 참전장교들, 중령, 대령급(해간 3, 4, 5, 6, 7, 8, 및 9기) 장교들을 대부분 전역시킴으로서 인체의 허리역활(전쟁을 통한 올바른 해병 정신과 해병대의 전통의 계승 유지)을 하고 있던 부위를 짤라버림으로서 해병대의 올바른 전통의 유지, 한국 전쟁 참전자들을 통한 올바르고, 역동하고 있는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유지할 수 없도록 불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귀신잡는 해병대", "무적 해병대"라는 우리가 한국 전쟁을 통하여 터득하고 이룩한 해병대의 전통을 변형시켜버렸음을 나는 근래 해병대의 현지부대의 방문을 통하여 보고 또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오늘의 해병대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오늘의 해병대는 당시의 해병대와는 달라진 모습이었음을 그들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변화를 나는 여러모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얼마 전 몇 번에 걸친 위관장교들과 부사관들의 해병대에서 처음 실시하는 전적지답사에 강사로 초빙되어 현장(중동부전선이었던 강원도 양구의 도솔산 및 서부전선이었던 장단 사천강지역)에서 당시의 전투상황을 강의하면서 또 현지부대를 방문을 통하여 관찰한 결과 등으로 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늘의 해병대는 우리의 시대(1950년-'70년)의 해병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으나 그들은 확실히 중간허리가 잘려진, 한국전 참전자들이 전무한 상태나 다름 없는 시간과 환경 속에서 새로운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확립하여 오늘의 해병대를 이룩하고 있음을 나는 그들의 변화된 환경과 근무자세 등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없고 다리가 없는 생물은 죽은 생명체가 아닌가?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그릇된 야망을 위하여 해병대를 이렇게 죽인 것이다. 그는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시키므로써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과 함께 해병대의 자랑스러운 정통적인 역사를 말살시킨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머리와 다리를 잘라내는 방법이야 말로 얼마나 잔인한 방법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면 술책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결과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으로 인하여 눈이 멀어져서 군인으로서의 올바른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은 그것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해병대가 두려운 존재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주변에서 종종 돌고 있던 소문이 있었다. 그것은 "이봉출 장군이 해병대 사령관이 되면 國是를 '反共'으로 내세우고 한 바탕 하게 되면 정권도 충분이 갈아 치울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이런 풍문을 박정희 정권의 핵심세력들이 그들의 정보 조직을 통해 입수 안했을 리가 없었고 또한 거기에 대한 대응책을 안 세웠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임해병대 사령관의 취임일은 7월 1일인데 정부에서는 이병문 사령관을 중임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그를 중임시킨 것은 그의 정치세력이나 재벌을 끼고 한 중임운동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부에서는 5월 하순에 그의 중임을 발표하였으나 이것은 위장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중임이 박 정권이 해병대를 해체시키기 위한 예비단계였음이 해병대의 해체일을 기준할 때 확실해 졌기 때문이다.
그 해 7월 초 박 정권은 10월 10일부로 해병대를 국방예산의 절감을 이유로 해체시킨다고 발표하고 해병대 사령관(이병문 대장)의 퇴임과 동시에 해병대를 해체시켰다. 이때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기간은 법적으로 1년(1974년 6월 30일)으로 되어 있었으나 박 정권은 그를 3개 월 10일 만에 퇴임시켰다. 이것은 애초부터 중임시킬 계획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실례이다. 이를 좀 더 심사숙고 해 보면 해병대는 그때 정부의 연막전술에 속아 넘어간 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이를 알고도 비겁하게 입을 다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위한 해병대 사령관이었단 말인가? 해병대를 위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위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가?
파월 청룡부대의 초대부대장인 이봉출 장군의 필연적인 해병대 사령관 취임을 저지할 명분도 없고 하여 의도적으로 이병문 사령관을 임시 유임시킨 것으로 나는 생각되었다. 그리고 해병대를 전격 해체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를 7월 초에 공표하고 3개 월후인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 사령관의 톼임과 함께 해병대를 해체시켰으나 실은 해병대 해체와 동시에 해병대 사령관을 퇴임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그들의 궁색한 면을 위장하였다. 그러나 이때 해병대 사령관에게는 8개 월이라는 잔여 중임기간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들은 해병대 사령관을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이용한 것밖에 안된다. 그렇지 않았으면 당연히 박 정권은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 발표와 동시에 해병대 해체도 공표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었던 이유는 해병대의 동요를 의식해서 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수법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아주 교활한 정치적 수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이병문 사령관의 임기는 6월 30일까지 였다.
박 대통령과 정 사령관의 단독면담
이보다 앞서 1970년 여름, 그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는데 정 사령관은 하정복을 입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진해의 대통령 별장'으로 정광호 사령관을 호출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나는 해병대학 총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사령관 부관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 별장에 갔었다. 진해기지 참모장도 이미 와있었다. 이때 별장에서의 박 대통령과 해병대 사령관과의 독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직후 정 사령관의 표정이 몹시 굳어져 있었다.
그때 정 사령관은 내용의 일부를 말했었는데 박 대통령이 "나밖에 이 일을 할 수 없으니.."하면서 정 사령관에게 이야기한 내용의 일부만을 말했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전혀 몰랐었다. 단지 무슨 중요한 내용이 있었구나하고 짐작만 했을 뿐이었고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후일에 생각해 보니 그 내용이 "해병대 해체"에 관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때의 정 사령관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후에도 얼마 동안 대화 내용보다 그의 심각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먼 후일(2007년)에 blog.empas.com에 실린 나의 "해병대 해체"에 관한 내용을 읽은 그 당시의 사령관 부관(Canada 거주)으로부터 비공개로 나(당시 해병대학 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내왔다. 그때,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정 사령관은 "해병대 해체"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대통령에게 표했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히 생각나는 것은 박 대통령이 말했다는 그 내용, 즉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 말이다. 그래서 당시 정 사령관의 표정이 그렇게 심각했었던 것을 이해할 만하다. 그로 인하여, "해병대의 해체"라는 박 대통령의 의사에 반대 의사를 표함으로 인하여 정 사령관은 중임을 못하고 6월 말에 퇴임하고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만일 그렇다면 후임사령관인 이병문 사령관 뿐만 아니라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해병대 해체"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계획을 정 사령관으로부터 듣고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알고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직 해병대 사령관 뿐만 아니라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과연 이에 대처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과거의 잘못 된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므로서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일을 그대로 덮어두게 되면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게 된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빤하지 않는가?
과거는 잊되 잘못 된 부분은 잊지 말고 개선하기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사를 연구하고 또한 역사공부도 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일이라 해서 쉬쉬 해 버리는 자는 반드시 그 과거로 인하여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만일 그렇지 않다는 자가 있으면 그런 자야말로 멍청한 자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해병대 전통"의 와해
"해병대의 해체"는 병력감축(지휘부 및 직활부대))을 통하여 얻은 국가예산의 절감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부대의 약화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해병대의 전통을 중단시키는 큰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이다. 해병대의 전통은 어떤 서적이나 이론을 통해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해병대의 전통은 이론이 아니고 그것은 한국 전쟁을 통하여 우리가 터득하고 이룩한 피의 결정이기 때문에 오늘의 누구도 이를 복원시킬 수 없다.
"해병대의 정신과 그 전통"은 그 전통을 계승, 유지하고 있는 인물을 통해서만 정확히 전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수 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지 어떠한 이론으로도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모방하는데 끝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 즉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이 없으며 그것은 또한 해병대를 모방한 마네킹(Mannequin)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박 정권은 해병대의 힘의 중심 역활을 하는 허리의 중간을 짤라버린 거나 다름이 없다. 허리가 짤린 동물은 죽은 시체다. 설사 다시 그 허리를 접합시킨다 해서 과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느 바보가 그렇게 생각할까? 이들은 결국 해병대를 다시 온전하게 회복될 수 없는 불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어떡하다 해병대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것은 정권에 의해서 마음대로, 위정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군 조직법도 자기 입맛대로 개정될 수 있다는 단적인 예를 우리에게 보여 준 실례이다. 어떻게 몇몇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이런 엄청난 무리수를 둘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엄청난 일은 미 해병대가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다시 이런 일이 앞으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특히 해병대의 수뇌부에서는 명심하고 항상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한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해병대 수뇌부의 몫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 그런 망국적인 국가예산의 절약이라는 미명하에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통한 병력감축은 막았어야 했고 앞으로도 막아야 한다. 이것은 해병대의 몫이며 또한 국민이 하여야 할 일이다. 그것은 해병대의 약화는 국가의 방위력의 약화를 의미하며 해병대는 국가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 우리가 국가 방호에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 전투하고 있을 때 "무적 해병대, 귀신잡는 해병대"하며 환호하며 성원하던 그 국민들은 이때 우리, 해병대를 방관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투에서 승전할 때마다 대서특필하던 언론조차도 묵묵 아무 소리 없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군대이며 또한 누구를 위하여 싸웠단 말인가? 나는 그런 국민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과연 해병대는 국민을 위한 해병대가 아니었단 말인가? 사실 해병대도 無敵海兵이라고 호언장담만 하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 겸손히 국민을 위한 해병대임을 보여 줬어야 했다. 이런 정책 수행은 지휘부의 몫이이며 또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어디 갈 때와 돌아 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속담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무슨 사연이건, 또 누구이건!
인원수는 쉽게 가감할 수 있지만 두동강이 난 해병대의 전통은 다시 접목시킨다 해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의 고위 군사정책 기획자들 뿐만 아니라 또한 해병대 수뇌부에서도 알고 있어야 하나 그들은 이를 모르고 있었거나 또는 관심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의 안위를 위햐여 박 정권이 어떤 불안감으로 인하여 해병대를 갑자기 해체시키는 것을 방광하고 있었을 것으로밖에 생각이 안된다.
"해병대의 전통"은 구전이나 어떤 문서로도 계승되거나 전수 될 수 없다.
"해병대의 전통"을 계승할 중간 허리를 국가 예산의 절감이라는 허구한 구실로 무 베듯 싹 잘라버렸으니 아무리 해병대 사령부를 재편성, 설치한들 이미 잘려나간 허리는 원 상태로 회복될 수 없고 또한 잘려진 반토막을 접합시킨들 온전한 해병대의 전통은 회복되거나 또는 계승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국가 뿐만 아니라 해병대 수뇌부는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은 아이들의 작난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짜인 위조품(Counterfeit)을 진품인양 내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 모든 해병가족들은 이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Motto에 있는 것 같이 "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미 해병대로부터 시작 된 현재의 Motto를 새로운, 한국 해병대 고유의 Motto로 바꿔야 한다.
그것은 국민과 정부에 신뢰받는 해병대가 돼지 못해서 일 것이다. 특히 정권에 의해서 두려운 존재로 경계의 대상이 돼 있었다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병대는 이런 점에 대해서 전혀 무감각했고 무지했었다. 특히 무지한 정치인들의 개입을 역대 사령관들은 묵인했을뿐, 그들에게 이용만 당했을 뿐 그들을 이용할줄 몰랐었다. 그것은 그때 해병대는 독불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우리 老兵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과연 해병대 사령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 당시 해병대내에 잠재하고 있던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활동에 가장 장애요소가 되었던 편가르기, 즉 "내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망군적인 유치하고 편협한 파벌의식,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해서 였다.
그럴 때 일수록 해병대는 내부적인 단결력과 국가에 대한 봉사 정신을 대내외에 과시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앴고 또한 내편, 네편을, 만군 출신이니, 일본군 출신이니, 또는 해간 출신이니, 해사 출신이니 등을 따지는 근시안적인 행태 속에 있음으로서 정권내부의 이상한 기류의 흐름에 전혀 무감각하였고 또한 무지하였다. 이것이 무엇보다 아쉬운 점이다. 때문에 우리는 해병대 수뇌부에 대해서 曰可曰否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해병대 수뇌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오늘의 해병대 수뇌부들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 말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병 정신과 해병대의 전통을 유지, 전승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2010. 10. 10
이근식 해병 대령(예, 해간 3기)

http://blog.naver.com/marinekslee/

일요일, 6월 05, 2011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 회칙
2006년 2월 18일 제정
 
 
제1장 총칙
 
제1조(회의 명칭)
본 회의 명칭은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라 칭 한다.
(The Korean Marine Corps Veterans Association In So. Bay)
 
제2조(본 회 본부의 소재지)
본 회의 본부는 싸우스베이에 둔다.
 
제3조(본 회의 결성 목적)
1.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긍지로 뭉쳐,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상부상조 한다.
 
2. 모국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모군인 대한민국 해병대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3. 본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 단체와 교류 협력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 기꺼이 참여 한다.
 
제2장 회원
 
제4조(회원의 구성)
1. 본 조 “2항”에서 규정한 정 회원을 주 측으로 회원을 구성하되 이와
병행하여 약간 명의 준회원과 명예 회원을 둘 수 있다.
 
2. 정회원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으로 본 회의 설립 취지에 찬동하며
본 회칙 “제5조”에서 규정한 정회원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행사하는 회원을 말한다.
 
3. 준회원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으로 본 회 운용 방침에 찬동하고 협력하고
있으나 모든 여건상 “정회원”으로서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없는
회원을 말한다.
4. 명예회원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은 아니더라도 본회에 협력하고 본 회의 활동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타군 출신 및 민간인은 본 회칙 “제4장” 회장단의
추천을 받아 회원의 동의를 거쳐 명예 회원으로 수용한다.
 
제5조(회원의 권리와 의무)
1. 회원의 권리
가. 정 회원은 선거권, 피선거권 및 의결권을 가진다.
나. 준회원과 명예회원은 발언권은 있으나 선거권, 피선거권 및
의결권을 갖지 아니한다.
 
2. 회원의 의무
가. 총회를 비롯한 제반 행사에 참여 하여야 한다.
나. 본 회칙 “제6장”에서 규정한 소정의 회비를 납부 하여야한다.
다. 회칙을 준수 하여야한다.
라. 회원 상호간의 친목유지에 힘써야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본 회의
명예를 실추 시켜서는 안 된다.
 
제3장 총회
 
제6조(총회의 소집 시기)
1. 정기 총회는 매년 11월에 개최한다.
 
2. 임시 총회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할 때 소집한다.
가.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나. 정회원 2/3이상이 소집을 원할 때
다. 정기 총회 및 임시 총회는 소집 10일전에 모든 회원에게 그 일시
및 장소 등을 통보하여야 한다.
 
제7조(총회의 성원과 의결)
총회는 재적 정회원 1/2 이상의 참석으로 성원되며, 참석인원 1/2 이상의
찬동으로 의결한다.
 
제8조(총회의 의결 사항)
1. 회칙 개정
2. 회장 선출
3. 예산 및 결산 승인
4. 사업 실적 평가
5. 본 회칙 “제7장”에서 회장단이 취한 조치를 추인한다.
 
제4장 회장단
 
제9조(회장단의 기능과 구성)
1. 회장단의 기능
본 회장단은 통상 개념으로서의 “이사회”의 기능과 집행부의 기능을
함께 가진다.
 
2. 회장단의 구성
회장 1명
부회장 1명
총무 1명
감사 1명
 
3. 회장은 필요에 따라 본 조 “제2항”에서 규정한 회장단의 수를
조절할 수 있다.
 
제10조(회장단의 임기)
회장단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회원의 동의를 거쳐 1년 연임할 수 있다.
 
제11조(회장단의 임무)
1. 회장
대 내외적으로 본회를 대표하고 제반 행사를 총괄 지휘하며
모든 회의를 주재한다.
2. 부회장
회장을 보좌하며 회장 유고시 그 직무를 대행한다.
 
3. 총무
가. 각종 문서를 유지 관리하고 제반 행정 사무를 담당한다.
나. 재정 현황을 기록으로 유지하고 반기 1회 재정 현황을 작성하여
회원에게 보고한다.
4. 감사
가. 본 회의 재산 상황과 회계를 감사한다.
나. 본 회의 운용과 그 업무에 관한 사항을 감사한다.
다. 감사 결과 부정 또는 불미한 점을 발견 하였을 때 이를 총회에
보고한다.
라. 보완 및 수정안 참조
 
제12조(명예 회장)
직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예우를 한다.
 
제5장 사업
 
제13조(경조사)
1. 정회원 및 그 배우자 직계 존, 비속의 경조사에 회장은 화환 혹은
조화를 보내야 하며, 다수 회원이 참여하고 축의금 및 조의금은 모든 회원이 1인 $10.00로 하고 그 이상은 회원 각자에 맡긴다.
* 보완 및 수정안 참조
 
제14조(월례회)
매월 1회 월례회를 개최한다.
 
제15조(기타 사업)
1. 타 전우회 및 상급 전우회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사업을 시행 한다.
2. 회원의 자질을 향상 시키고 선량한 미국 시민으로 필요한 소양을
갖추기 위하여 세미나 등을 개최한다.
3.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제16조(회장단의 사업 발굴)
1. 회장단은 본회 능력 범위 내에서 실행 가능한 사업을 발굴하고
시행한다.
2. 본회는 회장단에게 모든 사업 수행을 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제6장 재정
 
제17조(재원의 수입)
1. 정회원 준회원 및 명예회원이 본회에서 규정한 일정액을 년 회비로
납부한 이 수입이 본 회의 기본적 재원 이다.
2. 찬조금 및 기타 수입으로 본 회의 재정을 확충한다.
3. 모든 회원의 년 회비 납부 마감일은 3월말로 한다.
4. 본회가 주최하는 각종 모임의 회식비는 참가 인원의 공동으로 해결 하되 일단 본회의 수입 계정으로 처리한다.
 
제18조(재정의 지출)
1. 본 회칙 “제5장”사업에 소요되는 제반 사업비용 지출
2. 본 회칙 “제17조 제4항”의 회식비 지출
3. 본 회칙 “제16조 사업 발굴”에서 언급한 긴급사업 수행을 위한
비용 지출
 
제7장 상벌
 
제19조(포상)
본 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회원이나 외부 인사에게 표창이나
감사 표시등 포상이 이루어지며 상세한 사항은 회장단에 위임한다.
 
제20조(벌칙)
본 회 운용에 심대한 악 영양을 끼치는 회원에 대하여는 적절한
대응 조치가 필요하며 세부 실천 방법에 있어서는 회장단에 위임한다.
 
제8장 회계 연도
 
제21조(회계 연도)
본 회의 회계 연도는 매년 1월1일에 시작하여 동년 12월31일에 종료한다.
 
제9장 부칙
 
제22조(본 회칙의 시행일)
본 회칙은 시행일로부터 유효하다.
 
제23조(통상 관례 적용)
본 회칙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통상 관례를 준용한다.
 
 
 
2010년 1월 16일

보완 및 수정안

1. 보완
본 회칙 제4장(회장단)
제11조(회장단의 임무) “4”항
라. 감사는 전 전회장이 맡는다.
 
1. 수정
본 회칙 제5장(사업)
제13조(경조사)
1. 정회원 및 그 배우자의 직계 존 비속의 경조사에 회장은 화환
혹은 조화를 보내야 하며, 가능한 다수 회원이 참여하고 축의금 및
조의금은 회원 각자에 맡긴다.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 연혁
 
1. 1994년 6월 18일
Gardena에 위치한 우촌 식당에서 18명의 해병대 예비역이 모여
창립식을 가졌다.
기존의 “재미 해병대전우회” 분회 형식으로 출범하였으며, 회의 명칭을
“싸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라 칭하고 초대회장에 해병신병 218기 최순용
회원을 선임함.
 
창립회원은 다음과 같다.
김남창. 이효성. 황석환. 황대열. 이희철. 김창석. 정광원. 최순용. 김성환.
서규찬. 고은규. 이윤종. 최원갑. 박홍식. 최충렬. 이규섭. 이형렬. 박장엽.
 
창립 당시의 회장단은 다음과 같다.
회장 최순용. 부회장 고은규. 총무 이형렬.
초대 총무 이형렬 회원은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불과 몇 개월만에 사표을
제출 하므로 2대 총무에 박장엽 회원을 선임함.
 
1. 1995년 6월15일
Carson에 위치한 등대 가라오케에서 제2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회장에
해병 병 193기 황석환 회원을 제2대 회장으로 선출함.
수석부회장 김남창. 부회장 김성환. 총무 박장엽.
 
1. 1996년 6월15일
진희 가라오케에서 제3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3대 회장에 해병 병 225기
고은규 회원을 선출함.
수석부회장 김창석 부회장 박창인. 총무 박홍식.
 
1. 1996년 9월28일
제46주년 9.28 서울수복 기념행사를 즈음하여 전도봉 해병대사령관배
골프 토너멘트를 R.P.V.에 위치한 Los Verdes Golf Course에서
본 전우회가 주최하고, 각 전우회에서 70여명의 전우들이 참가한 가운데
대회를 성황리에 마침.
 
1. 1996년 10월 21일
본 회의 정회원 36명이 수록된 명부와 그 간의 활동사항을 중앙회에 보고,
중앙회가 정식으로 인정하는 정규 해병대전우회로 인준 받음.
인준번호 중앙제96-045
 
1. 1996년 11월 9일
Gardena 소재 삼오정 식당에서 제1차 임시 총회를 열고 다음 사항을
의결함.
1. 현행 회장임기 1년을 2년으로 하고 부득이한 경우 1년 더 연임할 수
있도록 회칙 변경.
2.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회칙변경.
이사회의 임원진 임명
이사장. 이효성.
이사. 김지항. 김장성. 황대열. 이성진. 정광원. 임수진. 장지용. 고은규. 정영훈. 최원갑.
감사. 김지항
3. 회장단 보강
부회장 황대열. 사무국장 장지용. 재무국장 서규찬.
 
1. 1996년 6월 30일
본회가 협조하여 해병대 2세 자녀들로 구성된 제3기 해병대 병영체험
단원을 본국 포항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입소시킴.
참가자녀: 장지용 회원 두 아들 형석. 형철군과 박창인 회원 아들 철민군.
 
1. 1997년 7월 20일
제22대 전도봉 해병대사령관께서 L.A 방문시 본 회가 이룩한 업적을
기려 공로패 증정.

1. 1997년 8월 19일
전도봉 사령관께서 방미 기간 중 회원들이 베풀어준 호의에 답하는 감사
서신을 고은규 회장 앞으로 보내왔음.
 
1. 1997년 10월
서규찬 재무국장이 자신의 사업관계로 사표제출. 후임에 임수진 회원 선임.
 
1. 1998년 6월 13일
Gardena에 위치한 삼오정 식당에서 제4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4대 회장에
병 218기 임수진 회원을 선출하고, 다음과 같이 회장단과 임원진을 구성함.
부회장 서규찬. 총무 공석. 재무 유병길. 이사장 이성진. 감사 정광원.
 
1. 1999년 6월 17일
Gardena 삼오정 식당에서 제5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5대 회장에 병 195기
이성진 회원을 선출함.
 
1. 2000년 6월 15일
Gardena에 위치한 신라회관에서 제6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제6대 회장에
병208기 정광원 회원을 선출함.
 
1. 2004년 12월 18일
황가네 식당에서 제7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7대 회장에 병 256기 최원갑
회원을 선출함. 부회장 이종민. 총무 권오덕.
 
1. 2006년 2월 18일
가디나에 위치한 두레박 식당에서 월례회 겸 제2차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본 전우회의 회칙을 총칙 제9장 제23조의 조항으로 제정함.

1. 2006년 1월1일 중앙회의 방침으로 미주 지역을 동부. 중부. 서부로 연합회 가 구성되면서 서부연합회 산하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로 인준 받음.
인준번호 해전중 제06-0135
 
1. 2006년 11월 18일
코리아나 가라오케에서 제8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8대회장에 병237기
박창인 회원을 선출함. 수석부회장 안성희. 부회장 홍성진. 총무 곽재문.
 
1. 2007년 5월
총무 곽재문 회원이 사업관계로 총무직을 사퇴하므로 후임 총무에 최도민
회원을 임명함.

1. 2008년 11월 15일
Gardena에 위치한 황가네 식당에서 20여명의 정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월례회 겸 제3차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현 박창인 회장의 임기를 1년 더
연임시키기로 전원 찬성으로 가결시킴.
 
1. 2009년 4월 15일
본 전우회는 제60주년 해병대 창설기념식을 즈음하여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김인식 총재로부터 모범 표창을 수여 받음.
(해전중 제09-58호)
 
1. 2009년 11월 22일
가디나에 위치한 두레박 식당에서 제9차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병 265기 최병완 회원을 제9대 회장으로 선출함.
 
1. 2009년 12월 12일
제8.9대 신구회장 이 취임식 및 송년의 밤 행사가 가디나에 위치한
문화회관에서 거행되었음.
 
제9대 신임회장단
회장:최병완 부회장: 박장엽 부회장: 권오덕 총무: 최도민

1. 2010년 11월 20일
본 전우회는 가디나에 위치한 마포 주물럭 식당에서 49명의 정회원 및
준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임시 총회를 가졌다.
별다른 안건 없이 최 도민 총무의 금년 사업 달성 및 결산 보고가 있었다.


싸우스베이 지역 해병대 예비역들의 순수친목 단체였던 “청룡회” 약사
 
1999년부터 2004년 기간 동안 해병대 예비역 및 타군 예비역 10여명 내외가
삼우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정기, 비정기적으로 모여 친교활동을 해왔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해병대 예비역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종국에 가서는
해병대 출신만 남게 되자, 차제에 그 명칭을 해병대 상징을 부각 시켜 청룡회라
호칭하기에 이르렀다.
본 회 제6대 회장(정광원) 재임시 본 회의 명칭인 “싸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 라는 종래의 명칭을 유보하고, 2003년 2월15일 L.A.에서 30여년을 사용해온
“재미 해병대전우회” 명칭을 일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등록함과 동시에
회칙을 개정하고 공고 하므로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 는 그 전통성이 허공에 사라지는 운명을 맞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뜻있는 수명의 해병대 예비역과 상술한 청룡회원이 주측이 되어 “싸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 를 부활시키고 재건하고자 하는 대승적 사명을 띠고 그 간의 공백 기간을 극복하고 2005년 1월 1일부로
최원갑 전우가 제7대 회장에 선출되고 회장단을 구성 하므로서 본회의 역사적 전통 과 명맥을 계승하게 되었다
 
청룡회 역대회장
 
초대 회장 황극섭(1999년 12월-2001년 12월)
제2대회장 임수진(2001년 12월-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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