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8월 02, 2011

[정전협정 58주년 주간 연재] 월맹군, 1개 연대가 청룡(파월 해병대) 1개 중대에 궤멸되자 "한국군 피하라" 지령

입력 : 2011.08.02 03:03

[영원한 사령관 채명신의 '내가 겪은 전쟁'] [下·끝]
당시 美 언론들 극찬 - "2차대전 후 최고의 승전보"… 닉슨 대통령도 나서 "쾌거"
강군 토대 닦은 베트남戰 - 64년부터 8년간 31만명 파병, 맹호·청룡부대 등 승리 신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가지려는 혈전(血戰)이 전쟁 말 곳곳에서 벌어졌다. 텍사스고지, M1고지 전투가 그 대표적인 현장으로 상대는 중공군이었다. 1953년 7월 27일, 3년 2개월에 걸친 포성(砲聲)이 멈췄다. 당시 나는 60연대장이었다.

1948년 제주 4·3사건부터 시작된 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 5년을 넘겼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1965년 3월 김용배 육군참모총장이 나를 호출했다. 육군작전참모부장으로 발령 내면서 1964년 터진 베트남전 연구를 지시했다.

좌익·종북주의자들은 지금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미제의 용병'이라 폄하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시 미국은 한국이 참전하지 않으면 주한 미2·7사단을 빼려 했다. 당시 미군 1개 사단 전력은 국군 수개 사단에 맞먹을 만큼 강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해병 청룡부대 용사들이 고노이섬에서 작전을 벌이기 위해 헬기에서 내리고 있다. 청룡부대는 월남전에서 ‘귀신잡는 해병’신화를 재확인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북한은 1962년 4대 군사노선으로 군비를 증강했다. 우리 전력은 6·25전쟁 때만큼이나 열세였다. 김일성은 "전쟁이 터지면 잃는 것은 휴전선, 얻는 것은 조국통일"이라고 종종 큰소리쳤다. 그런 때 미군 2개 사단의 이탈은 국가 위기였다.

결국 우리는 1964년 9월 외과병원 장병 130명, 태권도 교관 10명을 파병했다. 1965년 1월 8일 2000명의 군사원조단을 보냈고 비둘기부대·육군 맹호부대·해병 청룡부대를 파견하게 됐다. 8년간 연인원 31만2853명이 참전하게 됐다.

1972년 3월 사령부가 철수할 때까지 한국군은 월남에서 신화적인 무공을 세운다. 그중 내가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은 '두코 전투'와 해병 신화(神話)를 세운 '짜빈동 전투'다. 맹호6호, 오작교, 암행어사작전도 그에 못지않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킵시다~’라는 노래로 유명한 맹호부대 용사들. 성대한 환송식이 열렸다는 당시 조선일보 기사다.
1966년 7월 맹호기갑연대 3대대는 미군의 '파울리비아'작전을 지원하러 캄보디아쪽 국경 4㎞ 지점의 두코(Duc co)로 이동했다. 이때 우리는 대규모 인원과 화력을 동원하는 미군과 달리 중대(中隊) 위주 전술기지 방어 개념을 도입했다.

8월 9일 밤 10시 40분부터 다음날 새벽 4시 30분까지 월맹군 2개 대대가 인해전술로 아군 1개 중대를 기습했다. 적의 맹렬한 기관총과 박격포 공격을 교통호 속에서 견디던 맹호용사들은 미군 전차 2대가 지원해주는 틈을 타 반격에 나섰다. 백병전 결과는 대승이었다. 아군은 7명이 전사했지만 월맹군 189명을 사살하고 6명을 포로로 잡았고 기관총·로켓포·실탄 수만 발을 노획했다. 미군사령관은 현장을 찾아 "보지 않고는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압승"이라고 했다.

당시 공격부대는 월맹군 88연대 2개 대대 700명 병력으로 아군보다 6배나 많았다. 공산주의자들은 후퇴 때 꼭 시체를 챙겨 가는데 그럼에도 200명가량을 남긴 걸 보면 500명 가까이를 잃은 게 분명했다. 한마디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것이다.

다음 날 현장을 찾은 외신기자 중 1년 후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 된 모세 다얀이 있었다. 그는 당시 통신사 기자였는데 두코전투의 포병전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7년 6일전쟁 때 전격전(電擊戰)의 신화를 이끈다.

큰 전과를 올렸지만 월맹군의 보복이 걱정됐다. 다섯달 후 마침내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다. 파월한국군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청룡부대 11중대가 타깃이 된 것이다. 청룡부대 주둔지 주변의 부락민들은 거의 적색(赤色)분자였다. 월맹군은 한국군의 손발을 묶으려는 듯 아이와 어린아이들을 맨 앞에 내세우며 공격해 왔다. 1967년 2월 14일, 짧았던 구정(舊正) 휴전이 끝나는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당시 11중대 1소대장이 지금 재향군인회 신원배 사무총장이다.

월맹군은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했다. 적 수백 명이 달려들었지만 2분대장 이중재 하사가 화염방사기 사수(射手)의 뒤통수를 개머리판으로 쳐 무력화시킨 뒤 이진 병장, 김용길 중사가 수류탄으로 적 대전차유탄포·로켓 진지를 무너뜨렸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백병전은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됐다. 결과는 적 사살 243명, 포로 2명. 적 1개 연대 공격을 우리 해병 1개 중대가 막아내자 미국 언론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고의 승전보라 평가했다.

닉슨 대통령도 나섰다. "17년 전(6·25전쟁 때)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도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준 쾌거입니다!" 이 전투 후 뉴욕타임스가 월맹의 지령문을 보도했다.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라.'

월맹군은 한술 더 떠 한국군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니 비무장 한국군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말라.' 전투에 참가한 병사 전원이 1계급 특진했다. 대한민국 훈·포상법 제정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다. 한국은 월남에서 유례가 없는 전과를 올렸다. 난 이게 절대적인 전력 열세 속에서도 조국을 지켜낸 6·25전쟁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한국군은 세계가 무시할 수 없는 최강의 군대로 재탄생했다.

월요일, 8월 01, 2011

<<다음은 7월30일 전역한 해병 1103기 예비역이 쓴, 기수열외에 관한 체험담입니다.
인터넷에 돌기에 퍼왔습니다. 참고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구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해병대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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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예...
절대 기수열외는 없어져야 합니다.
기수열외란 개념조차 생겨선 안됩니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니 문제입니다.

저희 중대에도 기수열외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수에서 열외, 즉 해병대 하기싫어 하는 애들입니다.
예전 아주 오래된 대 선배 해병님들께서 군생활 하실땐 소대장도 빠따 치는걸 묵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빠따 몇대 치는걸로 영창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군기교육으로 인정했으니깐요.
그러나 요새 시대는 다릅니다. 멱살 한번 잡아도 영창갑니다.
물론 멱살 잡힌 당사자가 신고를 해야 합니다. 친고죄이지요.

이렇게 신고하는 애들이 많냐?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해병대가 좋아서 온 당사자들은 버팁니다. 힘들어도 참고 버팁니다. 이것이 왜 힘든지, 왜 이런 인계를 지켜야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학시기 및 다른 이유로 해병대를 지원한 병들은 버틸 명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꼰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새는 싸가만 가르쳐도 영창갑니다. 진짜 입니다.
저희들은 선임들께서 물려주신 전통을 유지하려 많이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떤 녀석이 새벽 똥칸에서 자기 맞선임이 싸가를 자기에게 가르쳐줬다고 맞선임을 간부한테 꼰질렀다고 칩시다.

이런 새끼를 끝까지 저희가 끌고 가야합니까?
이런 핵폭탄 같은새끼와 같이 해병생활하면 병들의 전통 완전 없어집니다.

다 영창가고 다 전출가버리고...
제 밑으로도 기수열외를 하고 싶어한다고 제가 오장일때 고백했던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바로 기수열외 시키지 않았습니다.
기수열외는 최후의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 혹은 일주일 더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독여줍니다. 맨날 저에게 맞은 후임지만 그 순간 만큼은 다독여 줍니다. 

그리고 다들 되돌아와서 다시 생활하겠다고,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존나 패버립니다. 기수열외를 하겠다고 말한 자체가 개찐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생활 잘 합니다.
이것처럼 저희들은 절대로 쉽게 기수열외를 시키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짜 핵폭탄 같은 새끼들...이런 새끼들은 저희가 끌고 갈수 없습니다.
그냥 해병 생활 안하는겁니다.
주먹으로 오고 가는 저희들의 특별한 유대감 등 모든걸 원하지 않는 새끼입니다.

기수열외=왕따?
절대로 아닙니다. 저희가 통상 알고 있는 왕따는 괴롭힘 당하는 존재입니다.
기수열외는 혼자서 싸제 생활하는겁니다.
이 기수열외새끼는 자기 선임들에게도 반말합니다. 그러나 선임들도 기분 나뻐하지 않습니다. 왜? 걔는 싸제 새끼니깐.
그러나 대신 절대로 해병취급을 안해주는겁니다.

기수열외 새끼 괴롭혀봤자 뭐가 좋겠습니까. 바로 꼰질러버리는데.
그냥 혼자서 싸제생활하게 내버려 두는겁니다. 투명인간 취급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해서 선택한 것입니다.
생활이 힘들면 맞선임에게 보고해서 병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생활 자체를 싫어하는 새끼니까 어쩔수가 없습니다.

이병때부터 그냥 자기 하고싶은것 마음껏 하게 내버려둡니다.
끌고 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이새끼를 같이 끌고 가버리면 중대 ,대대 초토화 되어버립니다.

요새 간부들 어떤지 아십니까?
땅개 새끼들이 타 부대 고참들에게 '아저씨, 아저씨' 하는게 옳은 병영 문화라고 지껄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참나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간부새끼들과 협조하는 새끼를 저희가 끌고 가야합니까?
저 뿐만이 아니라 제 후임들 모두 기수열외는 옳지 못 한것이란걸 알고 있으나
정말 어쩔수 없습니다.

저희의 속 사정을 대선배 여러분께서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전역했지만
밑에 후임들이 너무 걱정됩니다. 정말...
이상입니다..필승

월요일, 7월 25, 2011

대한민국 해병대 일본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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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이병 김태평

위장 크림 바르는 현빈, '나는 해병이다' [포토]



[엑스포츠뉴스=이준학 기자] 최고의 배우 현빈에서 해병대 이병 김태평으로, 미국 시민권을 뒤로하고 연평도로 온 김홍순 이병까지 8명의 신세대 해병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해병이다'가 오는 8월 8일 출간한다.

화요일, 7월 19, 2011

해병대, 가혹행위 병사 '빨간명찰' 뗀다

[레벨:16]슈퍼맨
2011.07.19 09: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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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병영문화혁신 긴급지휘관회의(자료사진)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긴급지휘관회의 (화성=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8일 오후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유낙준 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긴급 지휘관 회의 및 토론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유 사령관은 "최우선 과제로 병영 저변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악.폐습을 반드시 뿌리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1.7.8 drops@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


"중대급 이하부대서 구타ㆍ폭행하면 부대해체"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해병대가 구타와 폭언 등 가혹행위를 한 병사의 군복에 부착된 '빨간 명찰'을 떼어내고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등의 고강도 병영문화혁신 대책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국방부와 해병대에 따르면 이달부터 구타와 폭언, 욕설, 왕따, 기수 열외 등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대 병사에 대해서는 해병대원을 상징하는 빨간 명찰을 일정기간 떼어내고 해병대사령부 직권으로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해병대에 복무하는 병사가 빨간 명찰을 달지 않으면 사실상 '유령 해병'과 마찬가지로 아직 그런 전례를 찾기 어려워 해병대에서는 가장 큰 벌칙으로 꼽힌다.

   해병대 관계자는 "병영내 악ㆍ폐습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면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해병대의 위상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각오로 고강도의 병영문화혁신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병대는 가입소 기간을 포함한 총 7주간의 신병훈련 기간 중 극기훈련이 끝나는 6주차 금요일에 해병대원임을 상징하는 빨간 명찰을 달아주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오른쪽 가슴에 빨간 명찰을 달았을 때 비로소 해병대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게 된다.
해병대 관계자는 "빨간 명찰은 해병대 장병에게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표식물이 아니라 '해병대 아무개'라는 해병대에 소속된 한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명령인 동시에 징표"라고 말했다.

   해병대는 2사단 총기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병영 내 악ㆍ폐습 척결을 위한 혁신기획추진단(TF)에서 10월까지 수립할 병영생활 행동강령에 이를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병대는 중대급 이하 부대에서 구타와 폭행 등이 적발되면 아예 해당 부대를 해체해 재창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해병대사령관이 부대를 해체하고 재창설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법률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시행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병대는 기수를 폐지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관계자는 "현재 TF에서는 해병 기수를 유지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드러난 기수문화의 장ㆍ단점을 자세히 분석해 계승할 것과 고칠 것을 면밀하게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포항의 교육훈련단(신병훈련소) 입소를 기준으로 하는 기수는 병 상호간 위계질서를 분명히 밝혀 단합과 부대관리에 도움을 주는 장점도 있지만, 선임 기수들이 후임 기수를 때려도 된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게 하는 등 부작용도 크다"고 덧붙였다.

   해병대는 이날 오후 3시 김포시 해병 2사단 '필승관'에서 김관진 국방장관이 주관하는 가운데 민간 전문가와 군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병영문화혁신 대토론회에서 병영문화 개선 대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해병대 병사 4명과 해병 2사단 작전범위에 있는 육ㆍ해ㆍ공군부대 병사 각 1명씩이 토론자로 참가한다.

목요일, 7월 14, 2011

총기 난사’ 불구 경쟁률 2.83대 1 ‘빨간 명찰’ 의미… 대한민국 해병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들은 남들과 다르게 보이길 원한다. 머리 모양부터 다르다. 양옆을 모두 밀고 가운데만 조금 남기고는 자랑스러워한다. 이 스타일엔 이름도 있다. 상륙돌격형 머리. 여기에 팔각모를 쓰고, 군복엔 빨간 명찰 달고, 섀미로 만든 군화를 신는다. 어디서나 금방 눈에 띄는 이들은 대한민국 해병이다.

해병은 육·해·공군과 달리 모두 자원병이다. 최근 총기사고, 자살사고로 이미지가 곤두박질쳤지만 9월 입영할 1149기와 1150기 954명 모집에 2702명이 몰렸다. 경쟁률 2.83대 1. 지난해 평균 경쟁률 2.4대 1보다 훨씬 높다.

자원한다고 모두 해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훈련소에선 밥과 잠을 통제하며 모질게 다그친다. 이런 게 싫어서 집에 갈 사람은 지금 빨리 가라고. 10분 재우고 5분간 연병장 ‘뺑뺑이’를 돌리는데, 밤새도록 20번씩 하는 날도 있단다. 극한을 견디고 독기만 남아야 해병이 될 수 있다.

해병이 사는 법

해병 685기 김현진(41)씨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훈련소 동기 500여명 중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기도 전에 100명 이상 그 고됨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아 빨간 명찰을 단 건 300여명. 그는 어려서부터 선봉에 서서 싸우는, 강하고 용맹스런 이미지의 해병에 반했다고 했다. 오죽하면 부모님 반대를 걱정해 입대 전날까지 해병대 지원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입대 당일 새벽 3시에 부모님과 할머니를 깨워 큰절을 올렸다. 영문도 모르고 절을 받았던 부모는 대문까지 나와 아들의 다리를 붙잡고 만류했지만 김씨는 포항행 열차에 몸을 맡겼다. 그는 지금 아들만 셋이다. 세 아들 이름에 모두 바다 해(海)자를 넣어 해성(海成), 해창(海昌), 해강(海强)이라 했다. 다 해병대에 보낼 생각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해병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조재련(25·1014기)씨 역시 강한 이미지의 해병을 동경해 입대했다. 김태완(34·857기)씨는 해병이 된 친구 5명의 절도 있는 모습에 자극 받아 해병이 됐다. 한나라당 홍사덕, 민주당 신학용 의원,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작가 황석영, 현기영, 영화감독 김기덕씨, 영화배우 김태평(현빈)씨가 해병이 된 동기도 비슷하다.

이런 생각으로 자원한 해병 생활, 827기 허모(35)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해병엔 ‘호봉제’가 있다. 일병 2호봉(일병 진급 2개월차), 상병 5호봉 등 계급 호봉에 따라 허락되는 행동이 정해져 있다. 이병은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화장실도 허락 받고 간다. 내무반에선 무조건 차렷 자세다. 일병 5호봉이 되면 자유시간에 전화를 쓸 수 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을 수 있다. 사제 양말을 신을 수 있다.

일병 6호봉이면 졸병들 집합시킬 수 있다. 침상에 앉아 군화 끈을 묶을 수 있다. 복도에 있는 정수기 물을 마실 수 있다. 영내매점(PX) 출입이 가능하다(후임병을 데려갈 순 없다). 상병 5호봉이 되면 국에 밥 말아 먹을 수 있다. 내무반 TV를 켤 수 있다. 체육복 상의를 겉으로 빼서 입을 수 있다. 병장은 PX에 후임병 데리고 갈 수 있다. 내무반에서 라면 먹을 수 있다. 누울 수도 있다….”

취재 중 만난 20∼40대 해병 전역자 10여명은 모두 허씨가 전한 ‘호봉제’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대한 해병 1074기 강정민(22)씨도 이 ‘전통’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기수열외’. 부대원들이 집단으로 한 병사를 ‘왕따’시키는 이 악습을 조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수열외의 원래 의미는 작업장 등에서 일할 때 막내는 열외시킨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막내가 아직 부대 상황을 정확히 모르니 눈으로 보고 배우라는 뜻이었다. 신참의 군대 적응을 도와주려고 시작된 관행이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경북 포항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전역한 A씨(22)도 “구타 근절을 위해 수많은 교육이 실시됐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구타가 사라진 적은 없다. 이유도 없이 맞을 때는 정말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해병 전역자 중 “군대에서 맞지 않았다”고 말한 이는 없었다.

악습만 있는 건 아니다. 백령도나 연평도 해병이 휴가를 나갈 때면 선임병들이 후임병의 군복을 다려주고 군화를 챙겨준다. 휴가 나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으라는 뜻으로 휴가 전날엔 식사량까지 조절해준다. 김태완씨는 “육지로 휴가 나가는 걸 해병들은 ‘상륙한다’고 표현한다. 내가 상륙할 때마다 선임병들이 정말 세세히 챙겨줬다. 그래선지 제대 후에도 계속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하는 해병들의 마지막 ‘행사’는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진다. 요즘도 소속 부대에서 전역식을 마친 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가서 전역병들이 단체로 경례하며 마지막 전역 신고를 한다. 강정민씨는 “이순신 장군께 전역 신고를 해야 제대 절차가 진정 마무리되는 것이 해병의 전통”이라고 했다. 해병대가 사는 법

한국은 미국(17만5000명)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해병대를 갖고 있다. 별 셋인 해병대사령관을 포함해 장교 2000명(장군 15명), 부사관 5000명, 사병 1만9800명 등 2만6800명이나 된다. 2개 사단과 1개 여단, 상륙지원단, 교육훈련단, 연평부대 등이 있다. 이는 영국(7200명), 스페인(8900명), 대만(1만5000명)에 비해 월등히 많다. 해병대의 역할과 임무는 국군조직법에 명시돼 있다. 부대의 임무를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정한 것은 해병대가 유일하다. 그만큼 군사적 가치와 중요성이 높다는 얘기.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해군 산하로 편제됐던 국군조직법이 1973년 개정될 때 해병대 존재 근거가 사라지는 수모를 당했다. 유신 시절 엄혹한 분위기에서 해병대가 ‘딴 마음’ 먹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란 해석도 있었다. 1990년에야 해병대의 법적 근거가 다시 살아났지만 육군과 해군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해병대는 존재감만으로 대북 억지력을 갖고 있다. 북한이 해안 방어에 8개 사단이나 배치한 건 우리에게 해병대 2개 사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략적 중요성에도 실제 위상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해 국방부 예산 29조5627억원 중 해병대 예산은 7339억원. 전체의 2.5%다. 그나마도 대부분 인건비인 경상운영비가 6270억원이고 전투력 증강에 쓰인 건 1069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공군 전투기 F-15K 한 대 값이다. 올해 전투력 증강 예산이 1902억원으로 늘고 해병대 인사·예산권이 독립된 건 연평도 피격 사건 ‘덕’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 파트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서북도서 지역의 해병대 전력이 유사시 대규모로 북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능력이 되는지 대단히 회의적”이라며 “그만큼 형편없는 지원 속에서 해병대라는 이름으로 강한 군기와 훈련을 통해 전투력 약화를 대체해온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총기사고, 자살사고가 잇따른 해병 2사단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 2사단 방어영역인 김포와 섬들의 해안선을 펼쳐보면 일반 육군 사단의 2배 이상이다. 빈약한 지원에 관리해야 할 소초도 너무 많다. 그래서 더 강한 군기, 더 강한 통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과중한 경계 임무는 해병대 본연의 임무인 기동작전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나 해병대는 강한 군기를 갖고 있지만, 대한민국 해병대는 육·해·공군의 틈바구니에서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빈약한 지원을 해병정신 ‘악으로 깡으로’ 보완해가며 더 강도 높은 복무 관행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해병전우회가 사는 법

이렇게 힘든 해병 생활을 마치고도 그들은 다시 ‘해병전우회’란 깃발 아래로 모여든다. 호남향우회, 고대교우회와 함께 대한민국 ‘3대 인맥’이라는 친목단체.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사로 일하는 김태완씨는 2004년 귀갓길에 우연히 해병전우회 마크가 붙은 버스를 발견했다. 나이 지긋한 선배 해병들이 밤늦게 동네를 순찰하며 방범활동을 하는 모습에 그는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동참했다. 요즘도 매주 금요일 저녁 9시면 인천 남동구 해병전우회원들과 함께 여고생들 귀갓길을 살펴준다.

대학생인 조재련씨도 교내 해병전우회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충남 아산시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장내 정리를 도왔다. 그는 “해병전우회원들이 빨간 모자 쓰고 설치는 거 보면 나도 거부감이 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원봉사에서 사회에 기여하려는 진정성을 느껴 동참했다”고 말했다.

강정민씨는 아예 해병전우회에서 활동하다 직장을 얻었다. 매주 3차례 밤마다 여고 주변 순찰에 열심히 참여했더니 눈여겨 본 전우회 선배가 건설회사 취업을 주선했다. 해병전우회만의 독특한 단결력. 한 안보전문가는 이렇게 해석했다.

“해병 지원자는 대체로 애국주의와 마초이즘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이 전우회에서 다시 모이는 것은 그들만이 가졌던 혹독한 훈련의 기억을 공유하며 동질성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글=이제훈 기자, 사진=홍해인 기자 parti98@kmib.co.kr

화요일, 7월 12, 2011

강한 훈련으로 무적해병의 명성을/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레벨:19]운영자
2011.07.12 22:23:15
SSI_20110711173207_V.jpg<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지난 한주 해병2사단 총기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낭보가 아니었더라면 며칠 더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했을지 모른다. 동료 전우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김모 상병의 범행은 여타의 총기사건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난사(射)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조준하여 사격했다는 부분에서 더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더욱이 범행을 공모한 공범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주는 파장은 더욱 컸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우들에게 조준사격을 할 정도의 분노를 주었나. 바로 해병대가 자랑하던 그 전우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내무생활 때문이었다.

통상 인터넷에서 ‘특전사가 세냐? 해병대가 세냐?’라는 설전이 벌어질 때마다 결국 특전사는 훈련은 힘든데 내무생활은 편하고, 해병대는 상대적으로 훈련은 쉬운데 내무생활이 어렵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내무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바로 구타나 기합 등이 많다는 말이 되는데, 거의 대부분 집안의 외아들로 곱게 자란 젊은이들이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 아직도 구타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통계승 방식이다.

 또 기수 열외라는 것이 충격을 주었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악습은 아니고 2005~2006년쯤에 생겼다. 2000년대 이후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생겨난 왕따문화 세대가 군에 입대하며 생긴 현상이다. 과거처럼 구타를 자유롭게 하기 어렵게 되자 해병대문화에 따라오지 못하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때리기보다는 아예 제쳐놓는 것이다. 이를 투명인간화한다고 하는데, 심지어 식사 중에 식판을 엎어버린다든지, 빨래를 떨어뜨려 밟거나 버린다든지 하는 인간적으로 참기 힘든 일까지도 행한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해병대의 빛나는 전통과는 상반된 비겁한 행위다.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해병대의 여러 사고가 유독 해병2사단에만 집중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해병2사단은 훈련만을 중점으로 하는 해병1사단과는 달리 육군의 철책경계부대와 다름없이 주로 해안경계임무에 투입된다. 문제는 그들의 경계범위가 일반 육군 사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데 있다. 많은 부대가 소대단위별로 각각의 소초에 흩어져 생활하다 보니 지휘관의 방침이나 감독이 일선에까지 잘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포항에 있는 해병1사단은 전문 상륙군으로 육성되며 그 어떤 부대 이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그럼에도 해병2사단에 비해 사고가 적은 것은 바로 흩어져 있는 부대가 아니라 모여 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군은 이 기회에 그동안 수차례 지적되어 온 해병2사단의 경계지역을 재조정하여 과도한 피로도를 줄여주거나 해병대 본연의 임무에 맞는 기동군으로의 전환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포항에 있는 해병1사단의 상륙을 막기 위해 북한군은 동해안인 함경남북도 전역에 약 14만명 이상의 병력을 산개해 놓고 있다. 만약 해병2사단을 서해 후방으로 이전하여 전문 상륙군으로 육성한다면, 상륙작전으로 인해 6·25의 승리를 놓친 북한의 노이로제는 서해안에서도 평안북도까지 병력을 더욱 분산 배치할 것이다. 강한 군대인 해병대를 철책경계로만 쓰기에는 아까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는 해병대의 사고 예방과 함께 북한군 병력의 휴전선 집중도 약화를 초래하여 전쟁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해병대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군대 중 하나인 해병대.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철모에 불이 붙었음에도 대응사격을 했던 그 강한 정신력의 해병대. 해병대는 그들의 악과 깡이라는 전통을 가혹한 내무생활에서가 아니라 더욱 강한 훈련에서 세워주기 바란다.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해병대가 기수 열외나 치졸한 가혹행위 등 사나이답지 못한 행위들로 그 명예를 더럽히지 말았으면 한다. 훈련은 한층 더 힘들게, 내무생활은 즐겁게 하여 더욱 돈독한 전우애로 무장된 군대를 만들어 다시 한번 무적 해병의 빛나는 전통을 세워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