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6월 10, 2011

과연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해병대의 해체를 모르고 있었을까?

과연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해병대의 해체를 모르고 있었을까?

 비록 오래 전의 일이나 그 사실이 올바른 내용이었건 잘 못된 내용이었건 우리는 그 지난 일, 특히 잘못된 내용 등은 그 사실을 교훈삼아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전사나 과거사를 연구하고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가 당시 피눈물을 흘린 해병대의 해체에 관한 사실도 제외 될 수 없다.
근래에 와서 내가 Internet를 통해서 당시의 해병대 사령관의 부관(현재 Canada에 거주)으로부터 전해들은, 새삼스레 알게 된 해병대의 해체에 관한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당시(진해소재 해병대학 총장 1970년)에는 예상도 못했던 막연한 의문으로 그 후 곧 잊고 있었으나 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다시 확인 되었기에 해병대의 해체 당시의 당사자(도서경비부대장, 해병 대령)로서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해병대가 너무 커졌어"라고 말했다.
그는 60년 대말 어느 석상에서 "해병대가 너무 커졌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해병대가 너무 강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해병대가 강해지면 당연히 국가의 통치자로서, 국군의 통수권자로서 기뻐하여야 할 일이겠지만 그에게는 해병대가 부담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 자기의 오늘이 있게 해 준 해병대를 누가 키웠단 말인가?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 어떻게 다른 속뜻이 없고서야 대통령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까?
너무 커져서 인제는 자기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자신의 정치야망을 실현시키기에는 해병대가 너무 커져서 이제는 걸림돌이라는 뜻으로밖에 생각안되는 표현이다. 그러면 그는 왜 혁명동지였던 해병대를 경원시하게 되었을까?
국가경영을 올바르게 제대로 했으면 자기와의 혁명동지인 해병대가 커지는 것이 기뻐하여야 할 일이지만 그는 반대로 오히려 우려했다. 당연한 것을 우려하는 것은 그 속에 딴 꿍꿍이 속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교묘히 국가예산의 절감이라는, 그것도 얼마되지 않는 허구한 구실로 해병대의 전투력 강화라는, 수적 증가라는 미명하에 해병대 사령부와 그 직활부대를 해체시키므로써 머리(수뇌부)와 다리(지원부대)를 완전히 잘라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교활하고 악랄한 수법인가?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의 중단
거기에 더하여 한국전쟁 참전장교들, 중령, 대령급(해간 3, 4, 5, 6, 7, 8, 및 9기) 장교들을 대부분 전역시킴으로서 인체의 허리역활(전쟁을 통한 올바른 해병 정신과 해병대의 전통의 계승 유지)을 하고 있던 부위를 짤라버림으로서 해병대의 올바른 전통의 유지, 한국 전쟁 참전자들을 통한 올바르고, 역동하고 있는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유지할 수 없도록 불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귀신잡는 해병대", "무적 해병대"라는 우리가 한국 전쟁을 통하여 터득하고 이룩한 해병대의 전통을 변형시켜버렸음을 나는 근래 해병대의 현지부대의 방문을 통하여 보고 또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오늘의 해병대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오늘의 해병대는 당시의 해병대와는 달라진 모습이었음을 그들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변화를 나는 여러모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얼마 전 몇 번에 걸친 위관장교들과 부사관들의 해병대에서 처음 실시하는 전적지답사에 강사로 초빙되어 현장(중동부전선이었던 강원도 양구의 도솔산 및 서부전선이었던 장단 사천강지역)에서 당시의 전투상황을 강의하면서 또 현지부대를 방문을 통하여 관찰한 결과 등으로 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늘의 해병대는 우리의 시대(1950년-'70년)의 해병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으나 그들은 확실히 중간허리가 잘려진, 한국전 참전자들이 전무한 상태나 다름 없는 시간과 환경 속에서 새로운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확립하여 오늘의 해병대를 이룩하고 있음을 나는 그들의 변화된 환경과 근무자세 등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없고 다리가 없는 생물은 죽은 생명체가 아닌가?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그릇된 야망을 위하여 해병대를 이렇게 죽인 것이다. 그는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시키므로써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과 함께 해병대의 자랑스러운 정통적인 역사를 말살시킨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머리와 다리를 잘라내는 방법이야 말로 얼마나 잔인한 방법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면 술책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결과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으로 인하여 눈이 멀어져서 군인으로서의 올바른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은 그것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해병대가 두려운 존재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주변에서 종종 돌고 있던 소문이 있었다. 그것은 "이봉출 장군이 해병대 사령관이 되면 國是를 '反共'으로 내세우고 한 바탕 하게 되면 정권도 충분이 갈아 치울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이런 풍문을 박정희 정권의 핵심세력들이 그들의 정보 조직을 통해 입수 안했을 리가 없었고 또한 거기에 대한 대응책을 안 세웠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임해병대 사령관의 취임일은 7월 1일인데 정부에서는 이병문 사령관을 중임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그를 중임시킨 것은 그의 정치세력이나 재벌을 끼고 한 중임운동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부에서는 5월 하순에 그의 중임을 발표하였으나 이것은 위장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중임이 박 정권이 해병대를 해체시키기 위한 예비단계였음이 해병대의 해체일을 기준할 때 확실해 졌기 때문이다.
그 해 7월 초 박 정권은 10월 10일부로 해병대를 국방예산의 절감을 이유로 해체시킨다고 발표하고 해병대 사령관(이병문 대장)의 퇴임과 동시에 해병대를 해체시켰다. 이때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기간은 법적으로 1년(1974년 6월 30일)으로 되어 있었으나 박 정권은 그를 3개 월 10일 만에 퇴임시켰다. 이것은 애초부터 중임시킬 계획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실례이다. 이를 좀 더 심사숙고 해 보면 해병대는 그때 정부의 연막전술에 속아 넘어간 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이를 알고도 비겁하게 입을 다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위한 해병대 사령관이었단 말인가? 해병대를 위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위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가?
파월 청룡부대의 초대부대장인 이봉출 장군의 필연적인 해병대 사령관 취임을 저지할 명분도 없고 하여 의도적으로 이병문 사령관을 임시 유임시킨 것으로 나는 생각되었다. 그리고 해병대를 전격 해체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를 7월 초에 공표하고 3개 월후인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 사령관의 톼임과 함께 해병대를 해체시켰으나 실은 해병대 해체와 동시에 해병대 사령관을 퇴임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그들의 궁색한 면을 위장하였다. 그러나 이때 해병대 사령관에게는 8개 월이라는 잔여 중임기간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들은 해병대 사령관을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이용한 것밖에 안된다. 그렇지 않았으면 당연히 박 정권은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 발표와 동시에 해병대 해체도 공표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었던 이유는 해병대의 동요를 의식해서 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수법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아주 교활한 정치적 수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이병문 사령관의 임기는 6월 30일까지 였다.
박 대통령과 정 사령관의 단독면담
이보다 앞서 1970년 여름, 그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는데 정 사령관은 하정복을 입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진해의 대통령 별장'으로 정광호 사령관을 호출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나는 해병대학 총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사령관 부관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 별장에 갔었다. 진해기지 참모장도 이미 와있었다. 이때 별장에서의 박 대통령과 해병대 사령관과의 독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직후 정 사령관의 표정이 몹시 굳어져 있었다.
그때 정 사령관은 내용의 일부를 말했었는데 박 대통령이 "나밖에 이 일을 할 수 없으니.."하면서 정 사령관에게 이야기한 내용의 일부만을 말했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전혀 몰랐었다. 단지 무슨 중요한 내용이 있었구나하고 짐작만 했을 뿐이었고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후일에 생각해 보니 그 내용이 "해병대 해체"에 관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때의 정 사령관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후에도 얼마 동안 대화 내용보다 그의 심각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먼 후일(2007년)에 blog.empas.com에 실린 나의 "해병대 해체"에 관한 내용을 읽은 그 당시의 사령관 부관(Canada 거주)으로부터 비공개로 나(당시 해병대학 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내왔다. 그때,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정 사령관은 "해병대 해체"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대통령에게 표했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히 생각나는 것은 박 대통령이 말했다는 그 내용, 즉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 말이다. 그래서 당시 정 사령관의 표정이 그렇게 심각했었던 것을 이해할 만하다. 그로 인하여, "해병대의 해체"라는 박 대통령의 의사에 반대 의사를 표함으로 인하여 정 사령관은 중임을 못하고 6월 말에 퇴임하고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만일 그렇다면 후임사령관인 이병문 사령관 뿐만 아니라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해병대 해체"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계획을 정 사령관으로부터 듣고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알고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직 해병대 사령관 뿐만 아니라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과연 이에 대처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과거의 잘못 된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므로서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일을 그대로 덮어두게 되면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게 된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빤하지 않는가?
과거는 잊되 잘못 된 부분은 잊지 말고 개선하기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사를 연구하고 또한 역사공부도 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일이라 해서 쉬쉬 해 버리는 자는 반드시 그 과거로 인하여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만일 그렇지 않다는 자가 있으면 그런 자야말로 멍청한 자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해병대 전통"의 와해
"해병대의 해체"는 병력감축(지휘부 및 직활부대))을 통하여 얻은 국가예산의 절감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부대의 약화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해병대의 전통을 중단시키는 큰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이다. 해병대의 전통은 어떤 서적이나 이론을 통해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해병대의 전통은 이론이 아니고 그것은 한국 전쟁을 통하여 우리가 터득하고 이룩한 피의 결정이기 때문에 오늘의 누구도 이를 복원시킬 수 없다.
"해병대의 정신과 그 전통"은 그 전통을 계승, 유지하고 있는 인물을 통해서만 정확히 전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수 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지 어떠한 이론으로도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모방하는데 끝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 즉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이 없으며 그것은 또한 해병대를 모방한 마네킹(Mannequin)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박 정권은 해병대의 힘의 중심 역활을 하는 허리의 중간을 짤라버린 거나 다름이 없다. 허리가 짤린 동물은 죽은 시체다. 설사 다시 그 허리를 접합시킨다 해서 과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느 바보가 그렇게 생각할까? 이들은 결국 해병대를 다시 온전하게 회복될 수 없는 불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어떡하다 해병대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것은 정권에 의해서 마음대로, 위정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군 조직법도 자기 입맛대로 개정될 수 있다는 단적인 예를 우리에게 보여 준 실례이다. 어떻게 몇몇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이런 엄청난 무리수를 둘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엄청난 일은 미 해병대가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다시 이런 일이 앞으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특히 해병대의 수뇌부에서는 명심하고 항상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한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해병대 수뇌부의 몫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 그런 망국적인 국가예산의 절약이라는 미명하에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통한 병력감축은 막았어야 했고 앞으로도 막아야 한다. 이것은 해병대의 몫이며 또한 국민이 하여야 할 일이다. 그것은 해병대의 약화는 국가의 방위력의 약화를 의미하며 해병대는 국가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 우리가 국가 방호에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 전투하고 있을 때 "무적 해병대, 귀신잡는 해병대"하며 환호하며 성원하던 그 국민들은 이때 우리, 해병대를 방관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투에서 승전할 때마다 대서특필하던 언론조차도 묵묵 아무 소리 없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군대이며 또한 누구를 위하여 싸웠단 말인가? 나는 그런 국민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과연 해병대는 국민을 위한 해병대가 아니었단 말인가? 사실 해병대도 無敵海兵이라고 호언장담만 하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 겸손히 국민을 위한 해병대임을 보여 줬어야 했다. 이런 정책 수행은 지휘부의 몫이이며 또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어디 갈 때와 돌아 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속담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무슨 사연이건, 또 누구이건!
인원수는 쉽게 가감할 수 있지만 두동강이 난 해병대의 전통은 다시 접목시킨다 해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의 고위 군사정책 기획자들 뿐만 아니라 또한 해병대 수뇌부에서도 알고 있어야 하나 그들은 이를 모르고 있었거나 또는 관심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의 안위를 위햐여 박 정권이 어떤 불안감으로 인하여 해병대를 갑자기 해체시키는 것을 방광하고 있었을 것으로밖에 생각이 안된다.
"해병대의 전통"은 구전이나 어떤 문서로도 계승되거나 전수 될 수 없다.
"해병대의 전통"을 계승할 중간 허리를 국가 예산의 절감이라는 허구한 구실로 무 베듯 싹 잘라버렸으니 아무리 해병대 사령부를 재편성, 설치한들 이미 잘려나간 허리는 원 상태로 회복될 수 없고 또한 잘려진 반토막을 접합시킨들 온전한 해병대의 전통은 회복되거나 또는 계승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국가 뿐만 아니라 해병대 수뇌부는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은 아이들의 작난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짜인 위조품(Counterfeit)을 진품인양 내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 모든 해병가족들은 이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Motto에 있는 것 같이 "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미 해병대로부터 시작 된 현재의 Motto를 새로운, 한국 해병대 고유의 Motto로 바꿔야 한다.
그것은 국민과 정부에 신뢰받는 해병대가 돼지 못해서 일 것이다. 특히 정권에 의해서 두려운 존재로 경계의 대상이 돼 있었다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병대는 이런 점에 대해서 전혀 무감각했고 무지했었다. 특히 무지한 정치인들의 개입을 역대 사령관들은 묵인했을뿐, 그들에게 이용만 당했을 뿐 그들을 이용할줄 몰랐었다. 그것은 그때 해병대는 독불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우리 老兵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과연 해병대 사령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 당시 해병대내에 잠재하고 있던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활동에 가장 장애요소가 되었던 편가르기, 즉 "내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망군적인 유치하고 편협한 파벌의식,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해서 였다.
그럴 때 일수록 해병대는 내부적인 단결력과 국가에 대한 봉사 정신을 대내외에 과시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앴고 또한 내편, 네편을, 만군 출신이니, 일본군 출신이니, 또는 해간 출신이니, 해사 출신이니 등을 따지는 근시안적인 행태 속에 있음으로서 정권내부의 이상한 기류의 흐름에 전혀 무감각하였고 또한 무지하였다. 이것이 무엇보다 아쉬운 점이다. 때문에 우리는 해병대 수뇌부에 대해서 曰可曰否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해병대 수뇌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오늘의 해병대 수뇌부들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 말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병 정신과 해병대의 전통을 유지, 전승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2010. 10. 10
이근식 해병 대령(예, 해간 3기)

http://blog.naver.com/marinekslee/

일요일, 6월 05, 2011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 회칙
2006년 2월 18일 제정
 
 
제1장 총칙
 
제1조(회의 명칭)
본 회의 명칭은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라 칭 한다.
(The Korean Marine Corps Veterans Association In So. Bay)
 
제2조(본 회 본부의 소재지)
본 회의 본부는 싸우스베이에 둔다.
 
제3조(본 회의 결성 목적)
1.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긍지로 뭉쳐,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상부상조 한다.
 
2. 모국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모군인 대한민국 해병대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3. 본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 단체와 교류 협력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 기꺼이 참여 한다.
 
제2장 회원
 
제4조(회원의 구성)
1. 본 조 “2항”에서 규정한 정 회원을 주 측으로 회원을 구성하되 이와
병행하여 약간 명의 준회원과 명예 회원을 둘 수 있다.
 
2. 정회원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으로 본 회의 설립 취지에 찬동하며
본 회칙 “제5조”에서 규정한 정회원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행사하는 회원을 말한다.
 
3. 준회원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으로 본 회 운용 방침에 찬동하고 협력하고
있으나 모든 여건상 “정회원”으로서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없는
회원을 말한다.
4. 명예회원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은 아니더라도 본회에 협력하고 본 회의 활동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타군 출신 및 민간인은 본 회칙 “제4장” 회장단의
추천을 받아 회원의 동의를 거쳐 명예 회원으로 수용한다.
 
제5조(회원의 권리와 의무)
1. 회원의 권리
가. 정 회원은 선거권, 피선거권 및 의결권을 가진다.
나. 준회원과 명예회원은 발언권은 있으나 선거권, 피선거권 및
의결권을 갖지 아니한다.
 
2. 회원의 의무
가. 총회를 비롯한 제반 행사에 참여 하여야 한다.
나. 본 회칙 “제6장”에서 규정한 소정의 회비를 납부 하여야한다.
다. 회칙을 준수 하여야한다.
라. 회원 상호간의 친목유지에 힘써야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본 회의
명예를 실추 시켜서는 안 된다.
 
제3장 총회
 
제6조(총회의 소집 시기)
1. 정기 총회는 매년 11월에 개최한다.
 
2. 임시 총회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할 때 소집한다.
가.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나. 정회원 2/3이상이 소집을 원할 때
다. 정기 총회 및 임시 총회는 소집 10일전에 모든 회원에게 그 일시
및 장소 등을 통보하여야 한다.
 
제7조(총회의 성원과 의결)
총회는 재적 정회원 1/2 이상의 참석으로 성원되며, 참석인원 1/2 이상의
찬동으로 의결한다.
 
제8조(총회의 의결 사항)
1. 회칙 개정
2. 회장 선출
3. 예산 및 결산 승인
4. 사업 실적 평가
5. 본 회칙 “제7장”에서 회장단이 취한 조치를 추인한다.
 
제4장 회장단
 
제9조(회장단의 기능과 구성)
1. 회장단의 기능
본 회장단은 통상 개념으로서의 “이사회”의 기능과 집행부의 기능을
함께 가진다.
 
2. 회장단의 구성
회장 1명
부회장 1명
총무 1명
감사 1명
 
3. 회장은 필요에 따라 본 조 “제2항”에서 규정한 회장단의 수를
조절할 수 있다.
 
제10조(회장단의 임기)
회장단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회원의 동의를 거쳐 1년 연임할 수 있다.
 
제11조(회장단의 임무)
1. 회장
대 내외적으로 본회를 대표하고 제반 행사를 총괄 지휘하며
모든 회의를 주재한다.
2. 부회장
회장을 보좌하며 회장 유고시 그 직무를 대행한다.
 
3. 총무
가. 각종 문서를 유지 관리하고 제반 행정 사무를 담당한다.
나. 재정 현황을 기록으로 유지하고 반기 1회 재정 현황을 작성하여
회원에게 보고한다.
4. 감사
가. 본 회의 재산 상황과 회계를 감사한다.
나. 본 회의 운용과 그 업무에 관한 사항을 감사한다.
다. 감사 결과 부정 또는 불미한 점을 발견 하였을 때 이를 총회에
보고한다.
라. 보완 및 수정안 참조
 
제12조(명예 회장)
직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예우를 한다.
 
제5장 사업
 
제13조(경조사)
1. 정회원 및 그 배우자 직계 존, 비속의 경조사에 회장은 화환 혹은
조화를 보내야 하며, 다수 회원이 참여하고 축의금 및 조의금은 모든 회원이 1인 $10.00로 하고 그 이상은 회원 각자에 맡긴다.
* 보완 및 수정안 참조
 
제14조(월례회)
매월 1회 월례회를 개최한다.
 
제15조(기타 사업)
1. 타 전우회 및 상급 전우회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사업을 시행 한다.
2. 회원의 자질을 향상 시키고 선량한 미국 시민으로 필요한 소양을
갖추기 위하여 세미나 등을 개최한다.
3.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제16조(회장단의 사업 발굴)
1. 회장단은 본회 능력 범위 내에서 실행 가능한 사업을 발굴하고
시행한다.
2. 본회는 회장단에게 모든 사업 수행을 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제6장 재정
 
제17조(재원의 수입)
1. 정회원 준회원 및 명예회원이 본회에서 규정한 일정액을 년 회비로
납부한 이 수입이 본 회의 기본적 재원 이다.
2. 찬조금 및 기타 수입으로 본 회의 재정을 확충한다.
3. 모든 회원의 년 회비 납부 마감일은 3월말로 한다.
4. 본회가 주최하는 각종 모임의 회식비는 참가 인원의 공동으로 해결 하되 일단 본회의 수입 계정으로 처리한다.
 
제18조(재정의 지출)
1. 본 회칙 “제5장”사업에 소요되는 제반 사업비용 지출
2. 본 회칙 “제17조 제4항”의 회식비 지출
3. 본 회칙 “제16조 사업 발굴”에서 언급한 긴급사업 수행을 위한
비용 지출
 
제7장 상벌
 
제19조(포상)
본 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회원이나 외부 인사에게 표창이나
감사 표시등 포상이 이루어지며 상세한 사항은 회장단에 위임한다.
 
제20조(벌칙)
본 회 운용에 심대한 악 영양을 끼치는 회원에 대하여는 적절한
대응 조치가 필요하며 세부 실천 방법에 있어서는 회장단에 위임한다.
 
제8장 회계 연도
 
제21조(회계 연도)
본 회의 회계 연도는 매년 1월1일에 시작하여 동년 12월31일에 종료한다.
 
제9장 부칙
 
제22조(본 회칙의 시행일)
본 회칙은 시행일로부터 유효하다.
 
제23조(통상 관례 적용)
본 회칙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통상 관례를 준용한다.
 
 
 
2010년 1월 16일

보완 및 수정안

1. 보완
본 회칙 제4장(회장단)
제11조(회장단의 임무) “4”항
라. 감사는 전 전회장이 맡는다.
 
1. 수정
본 회칙 제5장(사업)
제13조(경조사)
1. 정회원 및 그 배우자의 직계 존 비속의 경조사에 회장은 화환
혹은 조화를 보내야 하며, 가능한 다수 회원이 참여하고 축의금 및
조의금은 회원 각자에 맡긴다.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 연혁
 
1. 1994년 6월 18일
Gardena에 위치한 우촌 식당에서 18명의 해병대 예비역이 모여
창립식을 가졌다.
기존의 “재미 해병대전우회” 분회 형식으로 출범하였으며, 회의 명칭을
“싸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라 칭하고 초대회장에 해병신병 218기 최순용
회원을 선임함.
 
창립회원은 다음과 같다.
김남창. 이효성. 황석환. 황대열. 이희철. 김창석. 정광원. 최순용. 김성환.
서규찬. 고은규. 이윤종. 최원갑. 박홍식. 최충렬. 이규섭. 이형렬. 박장엽.
 
창립 당시의 회장단은 다음과 같다.
회장 최순용. 부회장 고은규. 총무 이형렬.
초대 총무 이형렬 회원은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불과 몇 개월만에 사표을
제출 하므로 2대 총무에 박장엽 회원을 선임함.
 
1. 1995년 6월15일
Carson에 위치한 등대 가라오케에서 제2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회장에
해병 병 193기 황석환 회원을 제2대 회장으로 선출함.
수석부회장 김남창. 부회장 김성환. 총무 박장엽.
 
1. 1996년 6월15일
진희 가라오케에서 제3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3대 회장에 해병 병 225기
고은규 회원을 선출함.
수석부회장 김창석 부회장 박창인. 총무 박홍식.
 
1. 1996년 9월28일
제46주년 9.28 서울수복 기념행사를 즈음하여 전도봉 해병대사령관배
골프 토너멘트를 R.P.V.에 위치한 Los Verdes Golf Course에서
본 전우회가 주최하고, 각 전우회에서 70여명의 전우들이 참가한 가운데
대회를 성황리에 마침.
 
1. 1996년 10월 21일
본 회의 정회원 36명이 수록된 명부와 그 간의 활동사항을 중앙회에 보고,
중앙회가 정식으로 인정하는 정규 해병대전우회로 인준 받음.
인준번호 중앙제96-045
 
1. 1996년 11월 9일
Gardena 소재 삼오정 식당에서 제1차 임시 총회를 열고 다음 사항을
의결함.
1. 현행 회장임기 1년을 2년으로 하고 부득이한 경우 1년 더 연임할 수
있도록 회칙 변경.
2.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회칙변경.
이사회의 임원진 임명
이사장. 이효성.
이사. 김지항. 김장성. 황대열. 이성진. 정광원. 임수진. 장지용. 고은규. 정영훈. 최원갑.
감사. 김지항
3. 회장단 보강
부회장 황대열. 사무국장 장지용. 재무국장 서규찬.
 
1. 1996년 6월 30일
본회가 협조하여 해병대 2세 자녀들로 구성된 제3기 해병대 병영체험
단원을 본국 포항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입소시킴.
참가자녀: 장지용 회원 두 아들 형석. 형철군과 박창인 회원 아들 철민군.
 
1. 1997년 7월 20일
제22대 전도봉 해병대사령관께서 L.A 방문시 본 회가 이룩한 업적을
기려 공로패 증정.

1. 1997년 8월 19일
전도봉 사령관께서 방미 기간 중 회원들이 베풀어준 호의에 답하는 감사
서신을 고은규 회장 앞으로 보내왔음.
 
1. 1997년 10월
서규찬 재무국장이 자신의 사업관계로 사표제출. 후임에 임수진 회원 선임.
 
1. 1998년 6월 13일
Gardena에 위치한 삼오정 식당에서 제4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4대 회장에
병 218기 임수진 회원을 선출하고, 다음과 같이 회장단과 임원진을 구성함.
부회장 서규찬. 총무 공석. 재무 유병길. 이사장 이성진. 감사 정광원.
 
1. 1999년 6월 17일
Gardena 삼오정 식당에서 제5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5대 회장에 병 195기
이성진 회원을 선출함.
 
1. 2000년 6월 15일
Gardena에 위치한 신라회관에서 제6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제6대 회장에
병208기 정광원 회원을 선출함.
 
1. 2004년 12월 18일
황가네 식당에서 제7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7대 회장에 병 256기 최원갑
회원을 선출함. 부회장 이종민. 총무 권오덕.
 
1. 2006년 2월 18일
가디나에 위치한 두레박 식당에서 월례회 겸 제2차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본 전우회의 회칙을 총칙 제9장 제23조의 조항으로 제정함.

1. 2006년 1월1일 중앙회의 방침으로 미주 지역을 동부. 중부. 서부로 연합회 가 구성되면서 서부연합회 산하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로 인준 받음.
인준번호 해전중 제06-0135
 
1. 2006년 11월 18일
코리아나 가라오케에서 제8차 정기총회를 열고 제8대회장에 병237기
박창인 회원을 선출함. 수석부회장 안성희. 부회장 홍성진. 총무 곽재문.
 
1. 2007년 5월
총무 곽재문 회원이 사업관계로 총무직을 사퇴하므로 후임 총무에 최도민
회원을 임명함.

1. 2008년 11월 15일
Gardena에 위치한 황가네 식당에서 20여명의 정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월례회 겸 제3차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현 박창인 회장의 임기를 1년 더
연임시키기로 전원 찬성으로 가결시킴.
 
1. 2009년 4월 15일
본 전우회는 제60주년 해병대 창설기념식을 즈음하여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김인식 총재로부터 모범 표창을 수여 받음.
(해전중 제09-58호)
 
1. 2009년 11월 22일
가디나에 위치한 두레박 식당에서 제9차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병 265기 최병완 회원을 제9대 회장으로 선출함.
 
1. 2009년 12월 12일
제8.9대 신구회장 이 취임식 및 송년의 밤 행사가 가디나에 위치한
문화회관에서 거행되었음.
 
제9대 신임회장단
회장:최병완 부회장: 박장엽 부회장: 권오덕 총무: 최도민

1. 2010년 11월 20일
본 전우회는 가디나에 위치한 마포 주물럭 식당에서 49명의 정회원 및
준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임시 총회를 가졌다.
별다른 안건 없이 최 도민 총무의 금년 사업 달성 및 결산 보고가 있었다.


싸우스베이 지역 해병대 예비역들의 순수친목 단체였던 “청룡회” 약사
 
1999년부터 2004년 기간 동안 해병대 예비역 및 타군 예비역 10여명 내외가
삼우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정기, 비정기적으로 모여 친교활동을 해왔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해병대 예비역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종국에 가서는
해병대 출신만 남게 되자, 차제에 그 명칭을 해병대 상징을 부각 시켜 청룡회라
호칭하기에 이르렀다.
본 회 제6대 회장(정광원) 재임시 본 회의 명칭인 “싸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 라는 종래의 명칭을 유보하고, 2003년 2월15일 L.A.에서 30여년을 사용해온
“재미 해병대전우회” 명칭을 일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등록함과 동시에
회칙을 개정하고 공고 하므로 “싸우스베이 해병대 전우회” 는 그 전통성이 허공에 사라지는 운명을 맞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뜻있는 수명의 해병대 예비역과 상술한 청룡회원이 주측이 되어 “싸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 를 부활시키고 재건하고자 하는 대승적 사명을 띠고 그 간의 공백 기간을 극복하고 2005년 1월 1일부로
최원갑 전우가 제7대 회장에 선출되고 회장단을 구성 하므로서 본회의 역사적 전통 과 명맥을 계승하게 되었다
 
청룡회 역대회장
 
초대 회장 황극섭(1999년 12월-2001년 12월)
제2대회장 임수진(2001년 12월-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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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월 27, 2011

해병대 뒤흔드는 '현역 소장 2명 구속영장 청구'


입력 : 2011.05.28 03:04

해병대 전체 少將 중 절반 구속영장
건설업자가 각서 조작한 듯 사령관 탈락측 사실 확인않고 부하한테 신고하도록 지시
상관 음해 혐의로 해병장성 구속은 처음… 일부 "구속은 지나치다"

특전사와 함께 최강의 전투부대로 꼽히는 해병대를 뒤흔들고 있는 '현역 소장 2명 구속영장 청구' 사건은 한 장의 각서로부터 비롯됐다.

진급 로비 각서 나돌아

지난 3월 국방부 근무지원단장 해병대 박모 준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건설업자 김모씨(경남 창원)로부터 눈이 번쩍 뜨일 문서 사진을 입수했다. 유낙준 현 해병대사령관과 '구성한'씨 명의의 도장까지 찍혀 있는 이 각서는 지난해 4월 10일에 작성된 것으로 돼 있었다.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이었던 유 사령관이 해병대사령관으로 승진할 경우 구씨에게 3억5000만원을 지급하되 5000만원은 현금으로, 3억원은 제삼자인 류모씨의 농협 통장으로 입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유 사령관은 지난해 6월 동기생 홍모 소장과 경합 끝에 해병대사령관에 임명됐다. 그 직후부터 군 내부에선 유 사령관이 여권 실세에게 진급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박 준장은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문서까지 보게 돼 부하 수사관에게 군 수사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와 포항지방검찰청에 이 의혹을 신고하도록 지시했다고 군 검찰 조사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 조사 결과 이 각서에 등장하는 구성한이라는 인물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 류씨 통장에도 돈이 입금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당국은 해병대 장성들과 친분이 깊었던 김씨가 이 각서를 조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민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해병대 병사 출신인 김씨는 해병대 장성들과 친분이 두터웠다"며 "일부엔 목사로 알려졌으나 목사가 아니라 건설업자"라고 전했다.

박 준장은 지난달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2사단장이 됐다. 그러나 사단장 취임 한 달도 안 된 지난 10일쯤 김관진 국방장관의 지시로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박 사단장에 대한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김 장관은 군검찰에 "상관을 음해하는 군 지휘체계 문란 행위에 대해선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직해임 및 수사 진행

해군은 지난 21일 인사심의위원회를 열어 박 소장 보직해임을 결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상관(해병대사령관)에 대한 음해성 인사로비 의혹을 군 수사기관에 신고토록 부하에게 지시한 것은 직무범위를 넘어선 군 기강 문란행위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군 검찰은 26일 박 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군 검찰은 지난해 유 사령관과 경합을 벌이다 탈락한 동기생 홍모 소장에 대해서도 박 소장과 공모해 군 기강(지휘체계)을 문란케 한 혐의로 같은 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무고죄가 적용됐다.

이에 대해 군내에선 해병대 창설 이래 처음으로 상관 음해 혐의로 현역 장성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유 사령관의) 진급로비설이 나돌던 터에 각서까지 보니 해병대 발전을 위해 진실을 규명해야겠다는 순수한 취지에서 수사기관에 알리게 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이들이 단순히 진급로비 소문을 전한 수준이 아니다. 김 장관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까지 결심할 만한 중대한 사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군 내부에선 이번 사건의 원인이 해병대 내부의 파벌 싸움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유 사령관과 홍 소장이 진급을 놓고 다투다 홍 소장이 진급에 실패하자 해병대에선 "홍 소장 라인에 선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체불명의 각서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이야말로 군 내부의 진급을 둘러싼 파벌 다툼과 투서(投書)의 문제를 또 한 번 드러낸 것이라 김 장관이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김모씨는 지난달 10억원대 사기 혐의로 수배된 뒤 잠적한 상태다.

목요일, 5월 26, 2011

현빈, 군부대서 '백상예술대상' 대상 수상소감 전해

 
[엑스포츠뉴스=온라인뉴스팀 진주희 기자] 배우 현빈과 이병헌이 백상예술대상의 대상을 차지했다.

지난 26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두 사람은 각각 TV부문과 영화부문에서 대상의 영광을 누렸다.

특히 지난 3월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현빈을 백상예술대상 직접 찾아가 영상을 담아오는 열의를 펼쳤다.

현재 현빈은 경북 포항에서 7주간의 신병교육을 마치고 백령도 해병대 6여단에 자대 배치돼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현빈은 영상을 통해 "좋은 상 후보가 돼 기쁘고 훌륭한 선배님들과 거론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스태프분들 배우분들께 좋은 성과가 있는 날이길 바란다. 시크릿가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과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최북단 백령도에 있다. 서북도서 사수와 제 임무에 충실히 임하겠다. 그리고 국민과 해병대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진 = 현빈  ⓒ KBS 백상예술대상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