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2월 21, 2012
토요일, 2월 18, 2012
재미 해병대전우회 서부연합회 제4대회장에 병 195기 이성진 선출
해병대사령부 주관 짜빈둥전투 제45주년 기념행사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45주년 짜빈둥전투 전승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해 경례하고 있 다. 정의훈 기자 |
행사에는 당시 11중대장이었던 정경진(예비역 해병대중령) 짜빈둥전투 전우회장과 김기홍(예비역 해병대소장) 화기소대장 등 참전용사 및 유가족, 채명신(예비역 육군중장) 전 파월부대사령관, 해병대 지휘부 및 장병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전승 기념행사에 앞서 국립서울현충원 짜빈둥전투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 김 예비역 소장은 기념식 회고사를 통해 “짜빈둥전투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적을 기필코 격퇴하겠다는 장병들의 불굴의 의지와 투지”라며 해병대 정신 계승을 강조했다.
짜빈둥전투는 베트남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둥 부근 30고지에 배치된 해병대 청룡부대 3대대 11중대가 1967년 2월 14일 밤 11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 24분 사이에 북베트남군(월맹군) 2개 연대 규모의 야간 기습공격을 근접 전투와 백병전으로 격퇴한 전투다.
짜빈둥전투 참전 장병 전원은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았으며, 부대는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 전투는 한국·미국·남베트남의 베트남전 군사교범으로 채택됐다. <국방일보 윤병노기자>
토요일, 2월 11, 2012
육경선 중위(진) 해병대청룡부대
2008년 어느 날,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다케시마로 실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유관순 열사 같은 마음에 색이 바랜 광목에 태극기를 그렸고, ‘독도는 우리 땅’ 문구를 새겨 독도를 향해 울릉도로 떠났다. 비록 기상의 말썽으로 1년에 50일 정도만 입도할 수 있다는 독도엔 가지 못했다. 인연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발걸음을 돌렸지만, 그 이후로도 독도를 향한 내 집착은 꺾이지 않았다.
독도에 대한 갈구는 한국 안보에 대한 관심으로 바통을 이었고, 그해는 내가 생각하는 꿈과 맞물린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때마침 군인·국회의원·안보전문가 등이 참여한 국가전략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가안보 현안에 대해 전문가적 시각과 의견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는 모습에 내가 그만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부장관을 보며 나도 이렇게 국가안보의 중요점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독도가 좋고, 한국이 좋아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직업인 군인을 택했다고 한다면 감상과 낭만에 젖어 있다고 할까. 그런데 진실로, 진실로 내가 해병대 입대를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좋아서다. 내가 해병대를 사랑하는 것은 독도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고 아련하게 함께하고 싶고, 지켜주고 싶고, 그냥 그 자체로서 좋기 때문이다. 현역 여군장교 6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특별함, 무엇이든 닥치면 견뎌내고 헤쳐나갈 수 있는 해병대 투혼은 대한민국 역사와 너무나 닮아있다. 그렇게 해병대를 지원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용기에서 비롯한 결과다.
2011년, 이렇게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군인이 되겠다는 첫 번째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양파처럼 벗겨 내면 벗겨 낼수록 매력적이지만, 어려운 소대장 역할을 수행 중이다. 소대장은 군대에서 가장 작은 리더지만 내가 지휘하는 20명한테만큼은 훌륭한 어머니이고 싶다. 2012년 흑룡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나고 5중대 선봉소대 1소대와 함께 어떤 임무를 해낼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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