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 정희 대통령의 뇌물
故 박 정희 대통령의 뇌물
(맥도널드 더글라스社 중역의 증언)
한국의 월남전 참전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이
되었고, 한국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버리는 대가로 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지원을 미국으로 부터 이전을 받게 된다.
그 지원중의 하나가 "M-16 자동소총" 이었다.
한국이 사용하는 무기는 단발식 카빈 소총으로서 M-16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그야말로 장난감과 같은 수준의 무기였었고 우리는
그런 무기를 들고 남북대치 상황을 견디어 내어야만 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군사를 파병하는 조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M-16의 제조
수출업체는 맥도날드 더글라스社 였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의 수출 건을 따내게 된 뒤, 한국
을 방문한 맥도날드 더글라스社의 한 중역은 자신들의 무기를 수입
해주는 국가를 찾아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하게 된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것도 너무도 더웠던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나는(맥도날드 더글라스社의 중역) 대통령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의 집무실로 걸음을 재촉 하게 된다.
그리고 비서관이 열어주는 문안의 집무실의 광경은 나의 두 눈을
의심케 만들었었다.
커다란 책상위에 어지러이 놓여 진 서류 더미 속에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이는 책상 위에 앉아 한손으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남은 한손 으로는 부채질을 하면서 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있었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었다.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지만 도저히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 조차 힘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모순이 내안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손님
이 온 것을 알고 예의를 차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린 양복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러닝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미국 맥도널드 사에서 온 데이빗 심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 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먼 곳
에서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앉으시오." 한여름의 더위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
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 나 혼자 있는 이 넓은 방에서 그것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 것은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부채 하나면 바랄게 없지만 말이오. 이 뜨거운 볕
아래서 살 태우며 일하는 국민들에 비하면 나야 신선놀음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 동안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
겠나?" 나는 그제야 소위 한나라의 대통령 집무실에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봤던 여러 후진국의 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 .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네. 각하." 비서관이 에어컨을 작동하고 비로소 나는 대통령과
방문 목적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나는, 내가 한국
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이야기를 얘기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한국의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
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들이 보이는 작은 성의.. . ." 나는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박 정희 대통령)는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돈이구려."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 웃음
기가 머물렀다. 나는 그 역시 내가 만나본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알고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실망이 처음 그에 대해 느꼈던 왠지 모를 느낌이 많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거요?"
"각하, 맞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각하."
그는 수표가 든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 봉투를 보며 의아해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자, 이돈 100만 달러는 이제 내 돈이오. 내 돈
이니까 내 돈을 가지고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지금 당장
이 돈의 가치만큼 총을 가져오시오. 난 돈 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소." 나는 왠지 모를 의아함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 나에게 준 이 100만 달러는 내 돈도 그렇다고 당신 돈도
아니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 타향에서 그리고
저 멀리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 나라의 아버지로서 내 배를 채우
는데 사용할 수 있겠소." "이 돈은 다시 가져가시오. 대신 이 돈만큼
의 총을 우리에게 주시오."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의 소총을 더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나는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웃음을 보았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아버지의 웃음을. .
그렇게 그에게는, 한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형제들이요 자식들임을
느꼈다. 배웅하는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을 다시 한 번 둘러
본 나의 눈에는 다시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크게 보이는 참다운 한나라의 대통령으로
보였다.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 당시 더글라스 맥도날드사의 중역 / 데이빗 심슨 올림 =
= 옮긴 글=
토요일, 3월 12, 2011
국회 해병대전우회 회장 취임
국회 해병대전우회 회장 취임
강석호 국회의원, 24일 해병 출신 의원과 보좌진 등 회원 추대 받아
강석호 국회의원(한나라당, 영양․영덕․봉화․울진)이 대한민국 국회 해병대전우회 회장에 취임했다.
강의원은 24일 저녁 6시 30분 여의도에서 이화수․김재윤 의원 등과 보좌진,국회사무처 직원, 국회 출입 기자를 포함한 회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취임식에서 회장에 올랐다.
강의원은 취임사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시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해병대에 몸담아 국방의 의무에 임했다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국회와 회원 모두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이날 취임식에서 앞으로 해병대 독립 법안과 해병대회관 건립, 추모비 건립을 위한 연평도 방문, 4군 체제 확립 등 해병대의 4대 당면 현안을 집중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대한민국 국회 해병대전우회는 지난해 결성됐으며 전현직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 회원 7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태우 기자(ltw0303@hanmail.net)
강석호 국회의원, 24일 해병 출신 의원과 보좌진 등 회원 추대 받아
강석호 국회의원(한나라당, 영양․영덕․봉화․울진)이 대한민국 국회 해병대전우회 회장에 취임했다.
강의원은 24일 저녁 6시 30분 여의도에서 이화수․김재윤 의원 등과 보좌진,국회사무처 직원, 국회 출입 기자를 포함한 회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취임식에서 회장에 올랐다.
강의원은 취임사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시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해병대에 몸담아 국방의 의무에 임했다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국회와 회원 모두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이날 취임식에서 앞으로 해병대 독립 법안과 해병대회관 건립, 추모비 건립을 위한 연평도 방문, 4군 체제 확립 등 해병대의 4대 당면 현안을 집중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대한민국 국회 해병대전우회는 지난해 결성됐으며 전현직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 회원 7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태우 기자(ltw0303@hanmail.net)
금요일, 3월 11, 2011
육사교장 김충배 중장의 편지
김충배의 '육사교장의 편지'
* 다음은 2004년 11월 22일 김충배 육사교장이 교내강당에서 있었던 "생도와의 대화"시간에 생도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으로, 근래 인터넷 상에서 '육사교장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코리안 광부 만세!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구세대는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 다음은 2004년 11월 22일 김충배 육사교장이 교내강당에서 있었던 "생도와의 대화"시간에 생도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으로, 근래 인터넷 상에서 '육사교장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코리안 광부 만세!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구세대는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수요일, 3월 09, 2011
해병대 오랜 숙원이던 항공대 창설, 희망이 보인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 해병대가 지휘한다 (뉴델리 뉴스, 2011.03.08)
[국방개혁과제]해병대 숙원이던 기동헬기 40대도 도입키로
김포, 육군에 맡기고 해병대는 신속대응군으로 육성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오는 6월 창설된다. 사령부는 해병대의 지휘를 받게 되며 필요시 육·해·공군의 지원을 받게 된다.국방부는 8일 국방개혁과제 중 서북 NLL지역 대비태세 강화를 위해 해병6여단(백령부대),
연평부대를 포함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오는 6월 창설하고, 해병대 사령부를 모체로 합동전투참모단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서북도서 지역에는 북한군의 도발에 대응타격을 할 수 있도록 올해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K-9 자주포 등 2
4종의 탐지·타격·지휘통제 전력을 배치하는 한편 2015년까지 도서지역을 요새화하기로 했다.
현재 김포를 방어하고 있는 해병 2사단의 임무를 육군 보병사단에게 이양하고, 해병대는 장비와 편제 등을 바꿔
‘신속대응군’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해병대에 UH-60급 기동헬기 40대를 배치하고, 편성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병대 관계자들은 “이번 국방개혁과제 중 기동헬기 전력 보강은 그간 해병대의 ‘숙원(宿願)’이던 항공대 창설의 시작으로
볼 수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며 향후 해병대 강화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화요일, 3월 08, 2011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꼴이 되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꼴이 되다
대한민국은 세계5위의 군사강국이며 한국 해병대는 세계 2위의 막강한 특수 정예부대이다.
김일성이 해병대를 포항으로 이동 했을 때 북괴군 8개 사단을 동쪽으로 이동 배치 했다는 것은
북괴에겐 그만큼 위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한 작금의 북괴 동정을 보라 김포에 해병사단이 주둔하자
가시적으로는 서해부대를 빙자한 공기부양 부대를 전진 배치 하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두려운 존재가 한국해병대 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군을 한번 돌아보라
호랑이 밑 그림이 고양이로 변해 튀어 나오는 것은
육. 해. 공 삼군 이기주의에다 자기위상 밥그릇 문제 때문이다
전쟁과 국익 국방 안위에 육. 해. 공 삼군 해병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자기 위상을 내세운 견제적 이기심의 결과론 이러다 용두사미가 되지나 않을까 의구심 마저 든다.
해병대는 국가전략기동 타격부대이며 나는 자랑스런 해병대 예비역 이다
자랑스런 전통을 이어받아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명예를 지켜야 할 무적해병 인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해병대를 독립시킨 4군 체제 전환으로 가기 위해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발의 되여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4군 체제 도입이다. 참고로 미 해군 해병대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미 해병대문장(USMC Sentence)에 는
Department of the Navy United States Marine Corps 되여 있다
이 말은 “ 해군 조직의 미국 해병대”란 뜻 이 된다.
국회에 4군 체제 상정법안은 해병대의 독립과는 문제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3군 체제의 해병대를 독립시키는 법안이 옳은 것이라 봅니다.
230년 역사의 미국도 지금 것 그래왔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4군 체제는 없는 것이다.
본인도 해병대 이다. 옳은 것은 박수를 치고 아닌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해군은....... 해병대를 해군으로 부터 독립 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품 안 에 자식을 결혼시켜 같이 계속 사는 꼴이니....... 이러한 것을 비유하는 그것이 해병대의 독립 인 것이다. 이선호 박사님 말씀 처럼 73년 이전 법안의 해병대로 된다 라면 족 하는 것이다.
작금의 국방전술 계획에 의하면 해병대원 약2.000명쯤 증원하여 특수정예부대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포괄적이고 능동적인 전투부대로 나서야 되는 제4세대 전투개념론 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해병대장병들은 반기는데 해병대장교분들은 시큰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사 책임자며 실무자(이상우단장 전 한림대 학장)가 말 하기를 육군 한 사람 별 하나 딱 붙여 서라도 해병대로 보내서 특수정예부대를 만들겠다는 말이 왜? 나오 는 가?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미디어 매체에다 기사화 하여 말 했을까요?
말 하자면 대령 급 이상 스타 양반들 반응이 이상 하는 것이다.
휘하 부대 장병들은 박수치고 장교들은 무얼 했나...
나는 해병대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꼬집는다.
1967.11.6일 내 나이 19살 진해 훈련소
태극기아래 맹세한 후 국가관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해병대 아닌가?
오는 유를 가는 무로 할 것인가?
조국이 내게 해준 것도 없는데
나는 국가안위와 국익에 도움이 된다 면
내 피 한 방울 살 한 점까지
내여 놓을 수 있는 이것이
조국수호 자유인의 삶의 일부이며 국민의 몫이다.
부대 밖 현실을 참고 바란다,
불철주야 노심초사 하는
해병대의 건승을 빌며
지적(知的) 강군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박수를 보낸다.
KMC 195th,
李韓泰
대한민국은 세계5위의 군사강국이며 한국 해병대는 세계 2위의 막강한 특수 정예부대이다.
김일성이 해병대를 포항으로 이동 했을 때 북괴군 8개 사단을 동쪽으로 이동 배치 했다는 것은
북괴에겐 그만큼 위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한 작금의 북괴 동정을 보라 김포에 해병사단이 주둔하자
가시적으로는 서해부대를 빙자한 공기부양 부대를 전진 배치 하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두려운 존재가 한국해병대 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군을 한번 돌아보라
호랑이 밑 그림이 고양이로 변해 튀어 나오는 것은
육. 해. 공 삼군 이기주의에다 자기위상 밥그릇 문제 때문이다
전쟁과 국익 국방 안위에 육. 해. 공 삼군 해병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자기 위상을 내세운 견제적 이기심의 결과론 이러다 용두사미가 되지나 않을까 의구심 마저 든다.
해병대는 국가전략기동 타격부대이며 나는 자랑스런 해병대 예비역 이다
자랑스런 전통을 이어받아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명예를 지켜야 할 무적해병 인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해병대를 독립시킨 4군 체제 전환으로 가기 위해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발의 되여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4군 체제 도입이다. 참고로 미 해군 해병대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미 해병대문장(USMC Sentence)에 는
Department of the Navy United States Marine Corps 되여 있다
이 말은 “ 해군 조직의 미국 해병대”란 뜻 이 된다.
국회에 4군 체제 상정법안은 해병대의 독립과는 문제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3군 체제의 해병대를 독립시키는 법안이 옳은 것이라 봅니다.
230년 역사의 미국도 지금 것 그래왔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4군 체제는 없는 것이다.
본인도 해병대 이다. 옳은 것은 박수를 치고 아닌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해군은....... 해병대를 해군으로 부터 독립 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품 안 에 자식을 결혼시켜 같이 계속 사는 꼴이니....... 이러한 것을 비유하는 그것이 해병대의 독립 인 것이다. 이선호 박사님 말씀 처럼 73년 이전 법안의 해병대로 된다 라면 족 하는 것이다.
작금의 국방전술 계획에 의하면 해병대원 약2.000명쯤 증원하여 특수정예부대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포괄적이고 능동적인 전투부대로 나서야 되는 제4세대 전투개념론 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해병대장병들은 반기는데 해병대장교분들은 시큰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사 책임자며 실무자(이상우단장 전 한림대 학장)가 말 하기를 육군 한 사람 별 하나 딱 붙여 서라도 해병대로 보내서 특수정예부대를 만들겠다는 말이 왜? 나오 는 가?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미디어 매체에다 기사화 하여 말 했을까요?
말 하자면 대령 급 이상 스타 양반들 반응이 이상 하는 것이다.
휘하 부대 장병들은 박수치고 장교들은 무얼 했나...
나는 해병대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꼬집는다.
1967.11.6일 내 나이 19살 진해 훈련소
태극기아래 맹세한 후 국가관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해병대 아닌가?
오는 유를 가는 무로 할 것인가?
조국이 내게 해준 것도 없는데
나는 국가안위와 국익에 도움이 된다 면
내 피 한 방울 살 한 점까지
내여 놓을 수 있는 이것이
조국수호 자유인의 삶의 일부이며 국민의 몫이다.
부대 밖 현실을 참고 바란다,
불철주야 노심초사 하는
해병대의 건승을 빌며
지적(知的) 강군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박수를 보낸다.
KMC 195th,
李韓泰
軍, 장성 정원. 계급 11월부터 하향 조정
- ▲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국방개혁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관진 국방장관은 8일 오는 2030년을 최종 목표로 합동성 강화와 적극적 억제능력 확보, 효율성 극대화 등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307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추진된다.
김 장관은 “상부지휘구조를 합동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것”이라며 “현 합참에는 효율적인 합동작전 수행 능력이 가능하도록 합동군사령부의 기능을 추가하고 합동군사령관 기능을 겸하는 합참의장에게 작전 지휘를 뒷받침하는 군정 기능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장관은 “조직개편이 완성되는 2020년에는 총 15% 수준의 장군직위 감축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군은 6월까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11월부터 장성 정원 감축 및 직무 대비 상향 편제된 장군직위 계급을 하향키로 했다. 현재 장성 430여명에서 15% 감축되면 60여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김 장관은 “상부지휘구조 개편만으로도 장성 30여명을 포함한 약 1천여명의 간부를 감축해 비대해진 조직을 슬림화하고 연간 인건비를 1천억원 가량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요 의사 결정시 각 군의 균등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육.해.공군의 비율을 2대1대1로 유지해 3군 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이라며 “국군교육사령부와 같이 창설되는 합동부대의 초대 지휘관은 해.공군으로 보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상부지휘구조 개편에 따라 각 군 참모총장은 각 군 작전사령부를 통합한 지상.해상.공중작전본부장과 작전지원본부장을 지휘하게 된다.
지상.해상.공중작전본부는 현재의 육군 3군사령부, 해군작전사령부, 공군작전사령부에 위치하게 되고, 작전지원본부는 교육훈련과 편성, 군수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또 김 장관은 북한의 국지도발과 비대칭 위협에 우선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전력증강 우선순위를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계화 전력을 포함한 전면전 대비 전력을 조정해 절감된 재원으로 북한 잠수함 위협에 대비한 신규전력을 추가 확보하고 대포병탐지레이더와 합동직격탄(JDAM) 등 장사정포 대응 능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 장사정포 파괴 소요 일수를 1주일에서 1~2일로 단축할 것”이라며 “북한군 EMP(전자기펄스)탄으로부터 주요 지휘통제시설을 방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고(高)고도 무인정찰기(글로벌호크)를 도입해 적에 대한 감시 및 정찰 능력을 제고하고 스텔스 기능을 가진 F-X(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적기에 추진하는 한편 공격 및 기동헬기 전력을 대폭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 도입을 위해 방위사업청은 작년 미측에 LOA(판매의향서)를 신청했으며 오는 6월까지 답신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 등 사이버위협과 관련, 김 장관은 “사이버사령부의 조직과 기능을 강화하고 사이버 전문인력 개발센터 운용 등 사이버전 방어능력을 향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해 군은 지식경제부와 협의해 ’마이스트로’(사이버전사)를 양성할 계획이다.
6월에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장기 과제로 김포반도의 경계임무를 해병 2사단에서 육군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김 장관은 “육.해.공군대학과 합동참모대학을 통합해 합동군사대학을 내년 1월부로 창설하고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도 장기 과제로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