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3월 08, 2011

김포 반도의 경계근무를 육군과 교체

국방부 군 개혁과제(307계획)이 대통령께 보고 되었다고 합니다
모군관련 소식중 굵직한것이 몇몇 들어있기에 링크 올립니다

아래는 기사 원문 주소입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081426557449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5&aid=0000450560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국방부가 8일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청사진인 73개 국방개혁 과제를 확정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날 "대통령에게 보고한 7일에서 따온 계획인 '307계획 개혁과제는 현정부 국방개혁의 최고 최상의 개념으로 합동성강화, 적극적 억제능력 확보, 효율성 극대화 등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307계획 개혁과제는 지난 참여정부시절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해오다가 천안함 피격사건을 계기로 전면적 보완작업을 거쳐 최종발표된 것이다. 개혁안은 단기(2011~12년)과제 37개, 중기(2013~2015년)과제 20개, 장기(2016~2030년)과제 16개다. 기존 개혁과제 87개에서 해군기동전단 창설, 공군 전투사령부 창설, 각군 인쇄창.복지단 통합 등 완료과제 12제는 제외됐다.

개혁안의 세부내용에는 상부지휘구조 및 국방교육체계 개선,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 장성숫자 감축,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합참과 합동부대에 근무하는 육.해.공군 요원 구성비 준수 등 내용이 담겼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오는 6월에 창설된다. 서북 5개 도서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적도발시 도발원점에 대해 즉각 응징태세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함참의장이 작전지휘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관은 해병대사령관을 겸하게 되고 백령부대와 연평부대를 지휘하게 된다. 해병대사령관은 유사시에는 해군전력, 공군전력, 육군전력을 지휘할 예정이다.

해병대사령부를 모체로한 합동전투참모단도 대폭 강화되고 해병대는 병력은 물론 기동헬기, K-9등 총 24종 전력을 보강하기로 했다. 장기과제로는 해병대 사단을 재조정하기 위해 김포반도의 경계임무를 육군으로 교체
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서북도서 요새화를 통해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장병과 지역주민의 생존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합동작전 수행으로 전투력의 시너지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일, 3월 06, 2011

대학교 해병대 전우회 다양한 활동 벌여

제목 대학 해병대 전우회 다양한 활동 벌여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rokmc2006
대학 해병대 전우회 다양한 활동 벌여
학교, 지역 봉사활동 펼치고 리더십 강연도
(한국대학신문. 2011년 2월 22일)

상승회, 필승회, 하룡회 등 이름부터 강인함이 느껴지는 각 대학 해병대 전우회 모임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다.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나서서 돕고 지역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배우 현빈 씨의 해병대 지원 등 해병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학 해병대 전우회 모임을 찾아 해병대 이야기와 전우회에서 벌이는 다양한 활동에 대해 들었다.
하룡회는 1986년 창설된 인하대 해병대 전우회 모임이다. 이들은 꾸준히 인하대 내 호수인 인경호 청소 봉사를 해오고 있다. 호수 청소를 하며 군가를 부르거나 기마전을 선보이기도 해 학생들이 인경호 주변을 둘러싸고 이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또한 하룡회는 조를 짜서 매주 월요일 학교 아동양육시설인 향진원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룡회 회장인 나동현 (산업공학 1) 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데 해병대를 나온 우리보다 아이들이 체력이 좋아 지칠 정도”라며 “축제 때는 아이들을 학교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한국외대 해병대 전우회인 ‘아쿠아마린’ 역시 단순한 친목 도모 이외의 활동을 하고 싶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아쿠아마린 부회장인 류한솔 (러시아 3) 씨는 “학교 근처 식당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눔에 집에 갈 때 할머니들 간식도 사가고 할머니들의 말벗이 되어드린다”고 말했다.
연세대 해병대 전우회 모임인 상승회는 다른 해병대 전우회와 차별화된 기획을 진행했다. 상승회는 2009년부터 ‘해병대 정신과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마련했다. 
상승회 회장인 김기호 (기계공학 3) 씨는 “해병대 전우회에서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있을지 고민하다가 해병대 출신이면서 본보기가 될만한 선배를 모시고 리더십 특강을 진행했다”며 “올해에도 해병대 출신 선배를 모셔놓고 리더십에 대한 강연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덧붙여 “해병대 전우회는 고락을 같이 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학과 선후배보다 공유하는 것도 통하는 것도 많다”며 “선배들이 진로 상담도 많이 해주고 친구들에게 하기 어려운 고민도 선배에게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멘토-멘티의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한국대학신문
http://www.unn.net/news/detail.asp?nsCode=69197

금요일, 3월 04, 2011

[링크/첨부파일] 해병대 독립관련, 개정안 검토 보고서

http://cafe.naver.com/rokmc2006/17576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 해병대 독립 법안 발의

2011/03/03 19:30
 
안녕하세요. 정미경 의원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정미경 의원이 해병대의 독자적인 인사, 작전, 장비운영 권한을 보장하기 위한 국군조직법과 군인사법, 군수품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이 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해병대 독립을 위한 국군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1973년 국군의날 행사장에서의 불행한 사고


73년 10월 1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건군25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목전에 두고 있던 해병대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착찹한 심정을 금치 못하게 한 행사였다.

그 때 이미 약 400명의 전역 희망장교 중 약 300명은 9월 10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전역을 하고 그 나머지는 9월 30일과 10월 10일(이병문 사령관과 전속부관 각 국감실장 및 의장대장.헌병대 보안과장 등 10여명) 부로 전역을 하게 돼 있었으므로 부대 내부의 분위기는 몹시 썰렁했고, 당시의 사령부 보안대장 임경섭준장이 박 대통령에게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했던 것처럼 장병들의 감정이 그만큼 악화되어 있었다.

10월 10일 이병문 대장의 전역식을 마치고 그 날 부로 전역을 했던 사령부의 마지막 의장대장은 이상우 대위(해간 36기)였고 서울지구 해군헌병대 보안과장은 김무일대위(해간35기)였다.

그런데 해병대로서는 마지막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했던 그 날 여의도 5.16광장 행사장에서는 액운이 끼어 있었던지 육군공수부대 정예요원들의 예기치 못한 랜딩 실수가 발단이 된 해병대 대원들과 공수부대 대원들 간의 감정적인 충돌로 인해 공수부대 요원 한 사람이 척살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그 날을 마의 날로 기억되게 했다.

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메인행사인 분열식이 끝난 후 휘나레를 장식하는 육군공수특전단 요원들의 고공낙하 시범이 진행되고 있던 중 로이얄 박스의 랜딩 포인트에 낙하해야 할 수 명의 공수단 요원들이 그 지점을 벗어나 그 부근에 있는 해병대 행사부대 장별들의 일부 내무실 천막에 떨어진 것이 발단이 되어 해병대의 천막 감시병들과 공수단 대원들(하사관) 간에 시비가 벌어졌고, 결국은 그 사소한 시비가 화근이 되어 수모를 당한 공수단 요원들이 그들의 내무실로
가서 수십 명의 동료 대원들을 데리고 와서 소수의 해병대 감시병들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가하자 행사를 마치고 부서진 천막으로 돌아와 감시병들이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행사부대 대원들이 격분을 하여 때마침 행사를 마치고 그 천막 앞을 통과하고 있는 육군공수단의 지프차와 트럭을 세워 영문을 알지 못하는 공수단요원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러한 경황에 지프차에 타고 있던 공수단요원 한 사람이 일전을 불사할 태세로 차에서 내려 대검을 뽑아 들자 표범 같이 덤벼 든 해병대 대원 한 명이 그 대검을 탈취하기가 무섭게 (그 대검으로)그 공수단 요원을 척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자 육군헌병대와 해군서울지구 헌병대(장,윤웅섭 중령)에서는 즉각 합동수사반을 편성하여 포항으로 내려갈 병력수송열차와 김포 여단으로 들어갈 병력수송차량을 밤늦게까지 세워 놓고 진상을 파악하는 한편 가해자의 검거에 나섰으나 결국 가해자를 색출해 내지 못함으로써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되어 있듯 훗날(87년)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 서류에 결재를 한 공수단 출신의 전두환대통령이 박구일 중장에게 특별히 지시한 그 3가지 사항 중 "싸움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던 그 말은 특히 육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그와 같은 트러블이 재발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간곡한 충고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1983년 광주 상무대에서 만났던 해병대소위들에게

[레벨:10]운영자
2010.05.16 21:40:04
1983년  광주 상무대에서 만났던 해병대소위들에게 - 해병대CD中에서

어이 해병대 친구들! 나를 기억하겠나?
나는 18년 전인 1983년 당시 상무대 전투병과학교에서 자네들 ROTC출신 해병대 신임소위들을 위탁교육을 하던 육군교관 이준재다! 정말 반갑다! 정말 오랫만에 자네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구만. 자네들과 헤어진지 벌써 18년이 흘렀네. 이제 자네들과 나도 이젠 서로 같이 늙어가는건가?
하하..! 한 번 보고들 싶다.
자네들!
옛날 신임소위 초군반시절 육군소위들과 내게 훈련을 받을 때 기억들이 나나?너희 해병대출신 소위들이 우리 교관들을 좀(?) 많이 괴롭혔던 것도..? 후후...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니 정말 재미있고 우습다.당시 구대장까지 팼던 고모 소위를 비롯해서... 육군훈련이 시시하다며 객기를 부리며 야간 훈련에 불참하던 일, 그리고 내무반에서 술마시다가 육군소위들과 트러블이 발생하여 결국은 상무대 전체를 마당으로 집단 패싸움으로 번졌고 불과 30여명 밖에 안되던 너희들에게 수백명이 밀려서 도망가던 기억들... 그래서 너희들 해병대동기 전원을 퇴교조치의 엄명이 내려졌던 일...사태가 번지자 당시 상무대로 파견되었던 해군헌병대의 해병소령이 직접 나서서 칼같은 불호령 한마디가 순간에 사건을 잠재웠지만...
정말 그 때는 사건 사고가 많았었지? 하여간 말이지. 너희 해병대는 몇명이 안되는데도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치고 특이했어.그 때가 1983년 3월이었지? 너희 해병대 소위들 가운데 한명이 우리 구대장 한명을 식당에서 두들겨 패는 어처구니 없는 하극상사건 때문에 괜한 우리 교관들까지 완전군장하여 연병장을 밤새도록 뛰었던 일...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 동기생들 가운데 육군소위들만이 대신하여 밤새도록 뺑뺑이 돌고 얼차려를 당했던 일들.그 때 그 사건의 주범(?)이었던 고소위는 다음날 목포에 있는 해역사 해군헌병대로 넘겨졌다는데...그러나 정상적으로 제대를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금 모 은행에서 부지점장으로 근무한다는 소식도 언젠가 만났던 당신들 동기생으로부터 들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때 그 일들이 잊혀지지가 않아. 내가 직접 지휘하던 구대에 있던 2명의 소위들도 정말 나를 피곤하게 했었지..인상이 험악하고 술을 잘 마셨던 현소위는 워낙 성격이 터프한 운동선수(유도)라서 상대하기가 싫었고...또 한명의 곱상하던 김소위는 내 기억으로는 술은 전혀 안마셨고 몸집이 작은 데도 화려한 태권도 발차기 솜씨가 환상적이어서 출중하여 우리 교관들까지 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던 기억들...하지만 그 당시 너흰 터프하고 애물단지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정말 사나이 다웠던 것 같아. 정말 우리 교관들 애는 많이 먹였었지만 그래도 정말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더군. 그래서 솔직히 너희들 해병대가 부러운 적도 있었어.자네들이 16주 위탁교육을 마치고 해병대로 돌아가는 날...그 곳 상무대를 떠나면서. 나를 찾아와 악수하면서 마지막으로 눈물을 지었었지..?
그래서 나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어...그 때 자네들이 보였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 만나거든 그 이유를 한번 얘기 해줄 수들 있겠나.
16주 동안 사건 사고를 워낙 많이 저지르며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해병대소위들이 나에게 마지막 날 눈물을 보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나 이준재,
이 곳 홈페이지에 방문하여 당시 우리 구대원들에게 흔적을 남긴다. 나는 얼마 전까지 현역에 남아서 155마일 최전방에서 조국을 지키다가 이젠 사회인으로 돌아왔다. 반갑다,
그리운 친구같은 후배들이여...!
이준재